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하다

자존감이 무너져도 나를 지키는 방법

by 흘려도 괜찮아

결혼 전 나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걸 좋아했고,

일도 잘했고, 스스로도 그게 자랑스러웠다.


결혼은 그 빛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좋은 사람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일과 삶을 균형 있게 꾸려갈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은 남편 하나만 남았고,

그마저도 내가 결혼 전 알던 사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흐릿해지는 것 같은 두려움과 배신감 그리고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에 사로잡혔다.

남편과 아이들의 그림자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좌절감이 깊게 밀려들었다.


그땐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꼈다.

회복해보려고 나를 위한 쇼핑도 하고,

좋은 곳에 가보고, 여유 있는 하루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남편에게는 좋은 아내,

아이들에게는 완벽한 엄마,

만나는 이웃에게는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주진 못했다.


내가 잘하려고 의도했음에도,

그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화가 났고,

스스로가 부족해 보였다.


내가 믿고 있던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 역할 수행, 외부 성과에 기대고 있었다.

‘직장인’, ‘아내’, ‘엄마’로서 잘 해내는 나를 전제로 쌓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역할들이 흔들릴때는, 나도 함께 무너졌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자꾸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할까?

왜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만

내 존재가 괜찮게 느껴지는 걸까?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자존감이 무너진 게 아니라,

그 자존감이 "모래 위에 쌓여 있었던 것"**이라는 걸.


그 질문 안에서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가 ‘존엄’이었다.

무언가를 잘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괜찮은 나라는 감각.

그걸 설명해주는 단어가 바로 존엄이었다.


그건 자존감과는 전혀 다른 뿌리였다.

다시 시작하려면,

나는 그 뿌리부터 바꿔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타인의 판단을 예측하며 행동하던 걸 멈추고, 내 감정 하나하나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이 말이 나를 지켜주는 말인지’

‘이 행동이 나를 밀어붙이는 건 아닌지’

작은 선택 앞에서도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했다.


자존감을 다시 쌓는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였다.


존엄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서 자존감을 쌓는다는 건,

매일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연습이었다.

남에게 괜찮은 모습으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점점 나를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엔,

그 감정들이 모두 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에 쌓인 자존감은

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작지만 단단한 확신이 생겼다.


자존감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자존감이 오래가려면,

누구의 눈도 아닌 나의 감정 위에 쌓여야 한다는 걸.


그 뿌리를 ‘존엄’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위에 조금씩 나를 올려놓는다.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중심으로.


사람들 속에서 중심이던 때,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더 환해졌던 그 빛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나를 위해 켜준 조용하고 단단한 빛이 있다.

그 빛의 근원이 된 뿌리, 그게 바로 ‘존엄’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빛은 이제,

어떤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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