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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츄리시티즌 Dec 06. 2021

한지는 까다로운 종이가 아닙니다.

괴산에서 만난 사람 ①, 한지 명인 안치용 장인

컨츄리시티즌은 지역과 도시를 잇고 있습니다. 저희의 첫 번째 프로젝트 '괴산상회'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브런치로 먼저 전해드립니다.

안치용 한지장 ⓒ컨츄리시티즌


괴산 한지의 명맥을 잇고 계신 한지장이자 괴산한지박물관의 관장이신 안치용 장인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그냥 장이입니다. ‘한지장이’. 괴산에서 나고 자라며 아버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한지장이 됐지요. 3대째 한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황촉규)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죠. 과거로부터 많은 유산이 전해 내려오지만 1,000년이 넘는 시간의 흐름을 담은 그릇은 바로 한지입니다. 괴산에서도 바로 이곳 연풍은 오랜 시간 한지를 만드는 지역이었습니다.


왜 괴산에서는 오랜 기간 한지를 만들어왔을까요괴산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한지를 만들 때는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원재료가 되는 닥나무와 물,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죠. 그렇지만 장인은 사람이니 언제든 이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인의 손길보다는 천연재료인 닥나무와 물이 한지 제조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괴산은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보니 자연히 물이 좋을 수밖에요. 그리고 긴 섬유질로 엉킨 닥나무와 닥풀이 풍부합니다. 한지를 만들기엔 더할 나위 없는 지역인 셈이지요. 덧붙이자면 괴산은 과거 조선시대부터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길목이었어요.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괴산에 들러 한지를 구입해갔지요. 생산과 유통에 아주 적합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괴산이 한지 산지로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컨츄리시티즌


장인께서는 괴산한지체험박물관을 운영할 정도로 한지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십니다물론 가업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실 텐데괴산 한지의 다음을 이어갈 준비도 하고 계신지요.

여담이지만 저는 한지 때문에 결혼도 늦게 했습니다. 원래 한지랑 결혼하려고 했거든요. 그리고 늦은 나이에 딸을 봤습니다. 태명이 한지였던 예술종이 ‘예지’, 딸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한지에 관심을 갖는다면 이 가업의 유물을 꼭 예지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지에 관심을 갖는 청년이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희망은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한지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지체험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를 처음으로 만져보고 그 종이에 글을 쓰며,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경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을 통해 청년들이 한지를 더 많이 경험하고 제 기술을 많이 전수해갔으면 합니다.


사실 저조차도 한지를 만져본 게 상당히 오래전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아마도 디지털네이티브로 성장하고 있는 MZ세대는 한지가 더 어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MZ세대는 종이 자체를 어색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록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야 안전한 법이죠. 디지털 기록물을 기본으로 하되, 중요한 것은 한지에 백업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법 합니다. 한지는 보관에 용이하고 유지하기 쉽습니다. 그냥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면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까다롭지 않은 종이입니다. 예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족보를 생각하면 한결 쉽지요. 족보는 책장에 꽂아두고, 서랍 저 뒤편에 넣어둬도 사람과 함께 실온에서 살아간다면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잖아요. 한지를 일상에 더 가까이한다면 어색하지 않게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족보로 비유해 주시니 이해가 쉽네요최근에 유럽에 한지를 알리러 다녀오셨다고요.

최근 유럽으로 한지 순방을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에 갔을 때, 문서에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사람은 불을 피울 수도 있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잖아요. 종이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종이를 해치는 것도 사람인 셈이지요. 아울러 유럽의 전통 종이는 소가죽과 양가죽 등 동물 피로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동물 피는 단백질로 구성돼 있어 벌레의 접근, 온도와 습도 등 보관이 어려운 면이 있지요. 한지도 벌레가 접근하긴 하지만 서양 종이처럼 단백질이 있지는 않죠. 그래서 한지가 오랜 기간 보존됩니다. 서구권에서도 한지를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긴 섬유질을 가진 닥나무 한지가 보존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어 신기하고 또 기쁘기도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한지 부심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한지장이’로 4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서운한 것은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는 태도와 시선이지요. 저 같은 한지장이를 더 많이 키워서 더 큰물에서 놀게 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한지를 경험하고 배우려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괴산에서도 청년들을 많이 발굴하고 지원했으면 하지요. 

제가 더 바라는 게 있겠습니까. 그저 한지가 더 많이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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