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네

EP289. 초콜릿 당긴다

by Sonya J

Thursday, September 4, 2025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물론 이런 상황에도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요 며칠간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잘하는 것은 없지만 꾸준히 하는 것을 잘한다고 믿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빨리 뭔가를 습득하고 일처리를 빨리빨리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어쩜 나의 장점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서에서도 나름 손이 빠른 편이다. 그날 일은 그날 끝내자는 게 내 신념이기도 하고 일이 밀리는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오늘 할 일은 오늘 끝내야 한다.


매일 아침, 부서에 소포가 배달된다. 그 소포는 대부분 주문한 보청기이거나 수리되어서 돌아온 것들이다. 주문이 많은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 매일매일 소포가 배달된다. 보청기가 배달되면 약간의 서류 작업과 조립작업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이 여간 귀찮기는 해도 미리 해 놓지 않으면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침에는 예약 고객이나 워크인 고객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 작업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침에 소포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이 작업을 끝내려고 한다. 그래야 다른 업무를 보는데 방해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항상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직원들보다도 빨리 끝낸다. 난 그것을 참 자랑스러워했고 뭐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어제 출근했을 때, 전날 끝내지 못한 소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해는 했다. 그저께 일손이 부족하기도 했고 바빴기 때문에 못할 수도 있다. 나도 휴무였기 때문에 어제 출근하자마자 혼자서 그 많은 걸 다 조립하고 서류 작업까지 끝냈다. 2시간 정도 걸린 거 같다. 다른 직원들이 좋아했다. 빨리 끝내는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내가 이걸 함으로써 다른 직원들도 나 대신 다른 업무를 볼 수 있으니까 서로 윈윈이라고 여겼다. 이 작업은 보통 오전근무하는 직원들이 해 놓으는 거니까.


오늘은 오후 출근이라 오전 근무하는 직원들이 당연히 해 놓았을 거라고 여긴 소포작업을 출근하고 보니까 또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설사 바쁘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손이 안 갔다는 것은 일부러 안 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순간 이것들이 내가 오는 줄 아니까 내가 또다시 다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내가 할 테니까 그대로 둔 꼴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출근하자마자 말없이 바로 소포작업을 시작했다. 소리 없이 일하니까 이상함을 느낀 직원들이 괜찮냐면 물어본다. 아무 일이 없는 듯 나는 계속 일을 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을 느꼈다. 내가 열받았다는 것을. 자기네들도 찔리는 게 있으니까 눈치를 보는 것이겠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한다마는 만약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나는 더 이상 소포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미룰 거니까. 나는 서로를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 그 호의를 이용하려는 것을 못 참는다. 이번에 그걸 느꼈으니 어디 너네도 잘해봐라.


오늘의 픽:

당때기는구나.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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