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합니다.
약팀으로 평가된 선수가 강자를 이기고 승리를 거두기도 하며, 선수와 지켜보는 팬들 모두가 포기한 상황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기도 하죠.
'언더독의 반란'
'극장골'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런 용어들은 이런 스포츠만이 갖는 묘미 때문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온 국민이 기억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랬고, 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로 널리 알려진 펜싱 박상영 선수의 경기가 그랬고요, 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경기가 그랬습니다.
지난 7일 막을 내린 한국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각본 없는 드라마가 쓰였습니다.
7전 4선승제에서 시리즈 전적 2:3 인 가운데 펼쳐진 안양 KGC와 서울 SK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
제가 응원하는 안양 KGC는 6차전에서 패배하면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서울 SK에게 챔피언의 자리를 빼앗기는 처지에 놓이게 됐죠.
그렇게 맞이한 6차전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진행되는 듯했으나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격차는 벌어져 갔습니다. 한점 두 점 벌어진 격차는 금세 15점 차이까지 벌어졌고 이대로 또다시 우승컵을 놓치게 되는 듯했습니다. 그것도 홈경기에서요.
4 쿼터 막판! 작전 타임 이후 거짓말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가 쓰였습니다.
오늘 지면 끝이라는 것 때문인지, 만원 홈 관중들의 응원에 힘 때문인지 작전 타임 이후 안양 KGC는 15점의 리드를 순식간에 동점으로 만들어냈고, 이윽고 에이스 변준형과 오세근의 연속 3점 슛으로 역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골 한골 들어가고 먹힐 때마다 탄식과 환호의 소리를 질렀던 탓에 목이 쉬었고 온몸에 소름이 다 끼쳤었죠.
결과는 86:77 안양 KGC의 역전승으로 시리즈가 다시 원점이 되었습니다.
이틀 후 펼쳐진 운명의 최종전!
역시 라이벌 팀답게 시소게임을 펼쳤고 경기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시점, 안양 KGC는 4점 차 리드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역시 에이스는 위기에 나온다고 하던가요? 넣을 듯 말듯 가까스로 4점을 따라잡고, 마지막 공격 파울을 얻어낸 귀중한 자유투를 성공시켰던 끝에 100:97의 스코어가 되었습니다.
종료 3초 전,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마지막 서울 SK의 공격이 진행되던 찰나 오늘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캡틴 양희종 선수가 투입할 준비를 합니다. 5차전 부상을 입어 한 쪽팔에 깁스 보호대를 할 정도로 6 7 차전 내내 벤치를 지켜야만 했죠. 이번 경기를 끝으로 코트와의 작별을 고한 그였기에 그의 등장 만으로도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결국, 3초 동안 3점 차의 리드를 잘 지켜냈던 덕분에 안양 KGC는 창단 4번째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시리즈 전적 2:3인 상황에서 한 경기라도 내준다면 그대로 우승컵을 내줘야 하는 6차전!
좀처럼 뒤집힐 것 같지 않던 15점 차의 격차가 단 몇 분 만에 뒤집혔고, 7차전 역시 이대로 패배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상황에서 이윽고 역전과 우승까지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안양 KGC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고 있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뤄냈던 코칭 스텝이 새로운 코칭 스텝으로 교체됐고 에이스 3점 슈터 전성현이 최고 몸값으로 FA 이적을 해 공격진에 누수가 생겼죠.
에이스 변준형이 올시즌을 마치고 군입대가 예정되어 있고, 또 한 명의 에이스 오세근도 크고 작은 부상과 서른 후반의 나이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평이 있었죠. 그래서 시즌 시작 전, 안양 KGC를 우승후보를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캡틴이자 정신적 지주 양희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 예고를 해, 동료 선수들과 팬들에 적잖은 충격(?)을 주기도 했고요.
그런 와중에도 시즌 첫 번째 경기부터 우승 때까지 한 번도 1위를 내주지 않은 WIRE TO WIRE 기록.
시즌 중 일본에서 진행된 동아시안컵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 그리고 챔피언 시리즈 우승까지!
안양 KGC는 올 시즌 내내 KBL의 전무후무한 역사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써내려 갔던 거죠.
아! 그리고 캡틴 양희종의 LAST DEFENCE는 성공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