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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Aug 01. 2023

내 인생 N/1

터닝 포인트에서의 멘토링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드문드문 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길을 걷다 마주하게 되는 모퉁이마다 

터닝 포인트가 될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기회를 잡으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것이고, 

무심결에 흘려보내면 기회였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혹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도, 

준비된 상황이 아니라면 흘려보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30대 초반에 작은 사업체를 운영할 기회가 있었지만, 

내 상황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서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적이 있었다. 


반면, 내 인생 최고의 터닝 포인트로 자리하고 있는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라는 지점은 

끈기 있게 기회를 기다리고 기다려서 성취해 낸 것이었다. 


내가 처음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라는 

매력적인 존재를 알았던 것은 20대 중반이었는데, 

당시의 내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학비 조달 문제와 

졸업 후 불투명한 진로를 생각하다가 휴학을 했었는데, 

그 시기에 맞물려 엄마가 허리 수술을 받으셔야 했다. 


저축은 고사하고 빚에 허덕이는 집안의 가장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수술비와 입원비는 

친척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셔서 해결했다. 


하지만 1년 동안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엄마를 누가 돌볼 것이며, 

그동안의 생활비는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남동생은 군입대를 이제 막 한 상태였고, 

여동생은 아직 중고등학생, 

아빠 없이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는 자리보전. 


결국 휴학 중인 내가 엄마를 돌보기로 하고 생활비는 또다시 

친척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 시기에 나는 이모가 ‘이왕 이렇게 된 거, 학교는 관두고’라고 

운을 뗀 말에 서럽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괜히 믿지도 않는 신에게 제발 학교만 가게 해 달라고, 

그 후엔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빌기도 많이 빌었었다. 

엄마가 아픈 것도 가슴 아팠지만, 

주위 상황에 의해 내 꿈이 펼쳐 보이기도 전에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절망을 너무 여러 번 겪어야 했다. 


하루하루가 절망 속에 숨겨진 가느다란 희망 찾기로 힘겨울 즈음, 

워킹홀리데이 메이커였다는 한 여성의 글을 보게 되었다. 


사진: Unsplash의Leo Wieling


내게는 한 줄기 빛과 같았던 그 글의 주인공은 

심장이 뛰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잘 나가던 직장과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를 뒤로하고 

호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아직 스마트폰이 없었고, 

인터넷도 전국에 보급되기 전이었다. 


얼마 안 되는 정보를 모아 모아서 그녀는 당당하게 

워킹홀리데이 메이커가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노라 증언했다. 



그 글을 본 순간 내 심장도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게는 돌봐야 하는 엄마가 있었고, 

복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마치지 못한 학업이 있었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있는 대신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아무리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라는 것이 

그 나라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고는 해도 

당장 호주까지 날아갈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뭔 소용인가! 


심지어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에도 돈이 들어갔다. 


그즈음 스치듯 지나가다 본 책 제목이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죽습니다>였는데 

내 상황이 딱 그런 거 같았다.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나에겐 죄가 되어 

내가 이렇게 힘든가 보다, 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예전의 선배들은 

‘원래 꿈은 이뤄지지 않는 거라서 꿈’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나도 가슴 속에만 품을 꿈으로 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핑계 대며 자기 위안을 삼고 지나갈 뻔했다. 


엄마가 어느 정도 거동하시게 된 후, 

이제는 돈을 벌어야 했다.


마침 이전 직장 동료의 권유로 그때 당시에는 생소했던 

홈쇼핑의 텔레마케터에 도전해 보았다. 


또한 때맞춰 나라에서 학비 마련을 위한 학자금 대출을 

저금리로 시행했다면서 학교에 와보라는 

조교님의 연락도 받았다. 


교수님 추천이 있다면 

저금리로 상환기간을 늘려 받을 수 있다고도 해서 

교수님께 거의 빌다시피 했다. 


회사에 취직해서 월급을 받고 학자금 대출로 복학을 하고. 

그렇게 나의 주경야독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왜 그렇게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간절히 바라니 하늘이 돕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야간에 학교 다니는 것을 알고 

근무 시간 조정을 해 주는 등의 편의를 봐주었다.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PC방에서 과제를 할 때면 

PC방 사장님이 안쓰럽다고 컵라면을 무료로 주시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지만. 

아무튼 그때는 지나가다 우연히 경품 추첨을 하면 

작은 거 하나라도 당첨이 돼서 살림에 소소하게 도움이 되었다. 


그 정도로 운이 따라 주었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해 간 과제는 선배들도 못 받아 본 

교수님의 칭찬까지 받았고, 성적 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심지어, 전공과 무관한 자격증 시험을 한 번에, 

그것도 어렵다고 했던 회차에 취득했다. 


절망 속의 희망이 점점 커짐을 느꼈다. 



Pixabay, Dana_David님의 이미지




희망을 느끼게 되니 바로 크게 한 방이 왔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 2002 한일월드컵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전 국민에게, 

나아가 전 세계에 크게 외쳤다. 


누가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 놀라운 깨달음은 내가 가슴으로만 품었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꿈을 바깥으로 꺼내놓게 했다. 


엄마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혀서 좌절할 뻔도 했지만, 

다시 힘을 받으니 슬금슬금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먼저, 

깨어있는 신여성이셨던 외할머니가 강력한 내 편이 되어 주셨다. 


학자금 대출이 남았지만, 

어쨌든 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했다. 


회사에서도 여러 부서를 돌고 많은 일을 익히게 되어 

어떤 일이라도 주어진다면 잘해 낼 자신감도 붙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도전 정신을 키우게 했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 이듬해 초, 

나는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했다. 


짝사랑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대차게 까인 거 외엔 

그나마 모든 일이 평탄했던 그 시절, 

나는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로 첫 출발을 알렸다. 


당시 네이버 카페 <워킹홀리데이 길라잡이>에서 

나랑 같은 날 출발하는 동료를 찾아서 같은 비행기를 예약했다. 


덕분에 생애 처음 하는 비행기 여행이 외롭지 않았다. 


대신 조금 무섭기는 해서 밤새 와인을 마시며 얘기하다가 

승무원의 더는 와인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처음 하는 비행기 여행치고, 

처음 하는 외국 여행치고, 

처음 하는 나 홀로 여행치고,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날 속에서 했던 고민이 

더는 내게 영향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70~80년을 사는 울 집안 가계 수명에서 

육신이 연약한 내가 70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70분의 1년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로 산다는 것-그것은 한번은 

모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판단은 옳았고 나는 70분의 1 덕분에 

지금을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만일 그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로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오히려 그때의 경험이 이후 나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메이커 

#꿈은이루어진다 

#터닝포인트 

#내인생N분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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