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혼자였다. 이번 방학 내내도 그랬다. 내일이면 새로운 학교에서 개학이라는 사실조차 별 느낌이 없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또다시 ‘인간관계 좋은 명하진’이라는 역할을 외워서, 감정이라는 대사를 읊어야 하는 새로운 무대가 차려질 뿐이었다.
오후 3시, 텅 빈 거실엔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퍼져나갔다. 점심으로 시킨 차가운 초밥 포장 스티커를 괜히 만지작거렸다. 항상 먹던 메뉴. 맛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런데 조금 쉰 냄새가 났다. ‘여름이라서 상했으려나’ 곧장 쓰레기통에 버렸다.
부모님은 오늘도 오전 일찍 출근했다. ‘사업 미팅’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두 분은 새벽에야 집에 들어왔고, 내가 학교에 가기도 전에 다시 집을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가족 식사는 ‘식사’라기보다는 그저 정보만 주고받는 시간에 가까웠다. 내 성적, 동생의 과외, 학원 일정, 그리고 부모님의 사업 이야기. 감정이나 소소한 일상 얘기는 그 세계에서 항상 소외되어 있었다.
TV에서는 시끄러운 뉴스 특보가 흘러나왔다. [단독] 10대 학생 극단적 선택… 명문 학군지 충격. 화면 속에는 내일이면 내가 처음 발을 디딜 새 학교 교문이 비쳤다. 이름과 얼굴을 가린 채 'A고교 여학생'이라는 자막이 떴다. 며칠 전 전학 절차를 밟을 때 교무실에서 슬쩍 들었던 '전교 2, 3등 하던 애'라는 소문과 겹쳤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채널을 돌렸다. 죽음이라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나에게는 먼 나라의,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죽은 건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겠지.
띠링. 폰에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늘 그랬듯, 전 학교 친구들의 단톡방이었다.
[허거덩거스ㅋㅋ 울 반 단톡 봄? 자살했대.] [ㅁㅊ 걔네 진짜 치열하다며.] [우리랑은 아무 상관없지 않냐? 걔네 공부량 감당이나 되겠냐.] [시발 또 자살교육이나 쳐하겠네.]
읽씹 했다.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결국 모두가 각자의 몫을 연기하는 무대였다. 누군가는 전교 1등이라는 배역에 몰입하고, 누군가는 2등을 쫓으며 안간힘을 쓰는 배역. 어떤 아이는 반항아 배역을 맡아 일탈을 감행하고, 또 어떤 아이는 무대에 존재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배역을 연기할 뿐이었다. 죽음은 그저 한 아이가 자신의 배역을 끝내고 무대 뒤로 퇴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혹은 도망간 거던가. 딱 그뿐. 나는 그들의 단톡방에서 나와 자주 듣는 노래를 재생했다. 베이스 배경의 잔잔한 사람의 노래.
그저 잠시, 멍을 때렸을 때, 뇌리 깊숙이 박힌 어릴 적 기억 하나가 희미하게 스쳤다. 비 오는 날 혼자 빈 병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엄마의 뒷모습. 축 처진 어깨와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던 모습뿐이지만 왠지 모른 습한 분위기. 그리고 몇 달 후, 아무도 그 부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던 침묵. 어차피 끝난 게임. 우리는 변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슬픔에 묻어 나온 감정은 그저 삶의 흐름을 방해하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아까 그 아이의 죽음이 정말 별거 아닌 일이라면, 그때의 엄마는 왜 그토록 눈물을 흘렸을까. 잊으려던 기억이 잠시 튀어나왔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장면이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참 기분 나빴다.
쓸데없는 감정은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