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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라임 Nov 17. 2024

14살에 유럽여행 (2)

어디가 여자 화장실인지 알 수 없었다. 화장실 표시가 있는 쪽으로 가니 아무 그림도 없고 아무 색도 없는 방이 2개가 있었다. 순간 공용 화장실인가 하고 헷갈렸다. 몽골에서 공용 화장실을 본 적이 있었으니,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거의 화장실 앞에서 10분 동안 고민했다.


‘... 그냥 들어갈까?’


고민하는 동시에 한 아주머니가 당당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분을 따라갔다. 다행히 그곳은 여자 화장실이었다. 볼일을 본 후 나오니 옆 칸에서는 남성만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용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갔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성차별 때문에 확실히 구분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직 의문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는 지하철 비슷한 걸 타고 다른 건물로 이동했다. 그것을 탈 때 내가 외국에 왔다는 걸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사방천지가 외국인이었고, 다른 나라 언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어쨌든 다른 건물로 이동한 후 바로 숙소로 갈 버스에 탑승했다. 거기엔 덩치 있는 모습에 포스 있는 선글라스를 쓰신 버스 기사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분은 기사님을 보시자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나누시고 ‘밥’이라고 부르면 된다며 알려주셨다. 처음엔 조금 낯설고 무서웠지만, 웃으며 인사해 주시는 밥 아저씨를 보곤 ‘너무 귀엽고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가이드분이 마이크로 방송을 하셨다.


“안녕하세요. 이번 여행 가이드를 맡은-”


환영 인사가 끝난 후 박수가 쏟아졌다. 가이드님은 짤막하게 말씀을 하신 뒤 방송을 끝냈다.


숙소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다른 분들은 잠을 청하는지 아주 조용했다. 아버지도 피곤한 듯 졸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푹 잔 덕에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밖을 보며 풍경들을 눈에 담아두었다. 초원 위에는 푸른빛 바다가 얇게 보였고, 가끔씩 보이는 부서진 콘크리트 벽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외국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풍경을 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치이익. 버스가 멈추고 방송이 울렸다.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나와 아빠는 어기적 몸을 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숙소를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풀들로 둘러싸인 계단이 있었고, 숙소 벽은 빈티지한 게 딱 내 취향이었다.


캐리어를 찾고 키를 받아갔다. 정말 느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방에 들어가 보니 현관이 없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건가 싶었지만, 그냥 벗고 들어갔다. (불편..)


나는 들어가자마자 짐을 풀고 침대에 앉았다. 침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창문을 보니 핑크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가만히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있는 중, 아버지가 씻고 나오셨다. 나도 씻기 위해 옷들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화장실 자체는 널찍했지만, 샤워부스가 정말 작았다. 팔은 당연히 못 펴고 끼여 씻어야 할 것 같은 크기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이탈리아가 그런 거지.


샤워를 마치고 밖에 발을 놓았다. 와... 진짜 너무 부드러웠다.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호텔은 다 털바닥으로 되어 있던데... 그냥 모든 호텔이 다 그런 걸까? 어쨌든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만 빼면 너무 좋은(?) 바닥이었다.


머리를 말리며 또 창밖을 바라보았다. 핑크빛 하늘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두운 빛깔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조금 씁쓸했지만, 그 고요한 하늘을 나는 좋아했다.


아빠는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잘 안 될 줄 알았던 와이파이가 의외로 잘 되어 기분이 좋았다. 편안한 자세로 인스타에 스토리를 추가하고 프사를 변경한 후, 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보내니 아빠가 나를 불렀다.


“라면 끓여 먹을래?”


오, 드디어 한국에서 사 온 라면을 먹는 것인가?! 너무 기대됐다. 비빔면, 불닭볶음면, 참깨라면, 진라면... 등 다양한 라면들을 가지고 와서 무엇을 먹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공간을 줄이기 위해 봉지라면만 가지고 와서 뽀글이로 먹어야 했는데... 어쩌지? 비빔면이 먹고 싶었다. 물도 버리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냥 갑자기 비빔면이 확 끌렸다.


“나는 비빔면 먹을래.”


아빠는 알겠다며 비빔면 하나와 참깨라면을 꺼내셨다.


잠시 라면을 먹기 전, 우리는 밥 아저씨에게 산 생수를 끓여 보았다.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수돗물을 끓였을 때 남았던 석회 가루 때문에, 생수에서도 나오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생수병을 따서 아주 조금만 커피포트에 붓고 10분간 계속 끓였다.


조금 뒤, 커피포트를 열어보니 바닥이 하얗게 보였다. 손으로 쓸어보니 하얀 가루가 묻어 나왔다. 석회 가루였다. 유럽의 물에 석회 가루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많은 양의 석회 가루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소량의 물만으로 석회가 이만큼이나 나오다니… 충격이었다.


뭐 그래도 잘 먹었다. 먹고 내 몸에 석회가 쌓이는 건 찝찝했지만, 탈수로 쓰러지고 싶진 않았다. 이번엔 생수 1.5개를 넣고 끓였다. 두 통을 넣고 끓이려 했지만, 물이 귀했다. 하나에 2유로였나? 그래서 좀 비싸기도 하고 3개밖에 없기도 해서 아꼈다.


(물이 2유로인 건 건 싸긴 하지만, 밥 아저씨가 싸게 파는 거지, 밖에선 더욱 비쌌다. 식당에서도 물보다 탄산음료가 더 싸고 호텔 안 냉장고에 있는 물들은 3~4유로 했다.)


 (1유로 = 1,475원 [24.11.16일 기준])


다 끓인 물을 라면 봉지에 물을 담았다.

나는 비빔면을 먹을 것이니 물을 조금만 받고 나머지는 다 아버지에게 드렸다.

물을 다 받은 후 젓가락으로 봉지 입구를 막았다.

빨리 익기를 기대하던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비빔면은 차가워야 하는데... 일단 물을 어떻게 버리지?’


아, 한국에서 얼음을 가지고 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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