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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택

사회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by 정훈보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한의학과가 같이 있었고 한의학과 형이 나의 나이를 알았을 때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공부해서 늦게 들어올 만한 학교가 아닌데 나의 대학교 진학이 늦어 나의 지능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의 학교를 진학하였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동기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 덕으로 나는 학점을 노력한 만큼 받게 되었다. 대학원 진학 당시 남들은 비겁하게 대학원을 간다 했지만 난 진지하게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집에서 어머니는 "네 까짓게 대학원에 간다"라고 하면서 어려운 집안 환경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셔서 집안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원에 다닐 때도 얼른 대학원 그만두고 대학교를 나왔으면 "아래서부터 박박 기어서 돈 벌어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 말은 지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야속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런 저주 속에서도 서울에서 학교 생활은 학교도 커서 이동시간도 많았고,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나는 서울에서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였다. 25세에 간 대학원에서 몸무게가 5kg 빠졌고 혈압이 높다면서 혈압관리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원 진학 당시 정부사업을 하는 기관 조교로 근무했을 때, 같은 세부전공에서 박사학위 받은 교수님이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였고 그 교수님은 나에게 기독교를 믿어보라고 하였다. 그 교수님이 나에게 박사논문을 주었을 당시 논문 첫 장에 "앞으로의 인생이 순탄하기를 바라며.."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조교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박사학위 받은 교수님과 기도모임이 있었는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박사학위 받은 교수님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박사학위 받은 교수님이 논문작성을 위한 자격시험 답안지 쓰는 방법을 알려주어서 다행스럽게도 논문 자격시험을 통과하여서 이제는 졸업까지 논문만이 남았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기존의 선행연구를 찾아 보았지만, 선행연구의 약점은 보이지 않고 그 연구자 논문에 감탄사를 남발하였다. "진짜 잘 썼다..." 이러다 보니 내가 더 연구할 만한 주제가 보이지 않았다. 학위 발표를 위한 접수기간이 다가와서 논문주제를 가지고 교수님에게 찾아갔더니 교수님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지도교수님께 우겨 볼 논리가 없어서 논문은 못 쓰게 되었고, 집에 와서 산책을 하면서 논문을 쓸 수 없는 이유를 궁리해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은 나에게는 힘을 빼고 하나하나 차근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대를 갈 결심을 하였다. 그 당시 나이는 28세였다. 장교시험도 봤지만 장교는 복무기간이 길어서 복무기간이 가장 짧은 육군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고 훈련소에서 나는 다행히 최고령자는 아니었고 29세 공채 개그맨이 최고령자였으며 현재는 정치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자대배치를 받고 최종적으로 중대로 갈 때 대대장과 면담을 하는데, 대대장님은 나의 사정을 알아보시고는 중대장에게 군복무 시 논문을 쓸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 말에 반신반의하였고 실제로 중대로 가 보니, 환경이 열악했다. 중대에는 공부를 하는 중대원이 없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소대장 정도만 전역을 앞두고 공부하는 정도였다. 이등병이 자대배치하자마자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소대장은 과거에 공부했던 선임 중 멘사회원 한 명 있었다고 하는데 그 공부하는 분은 선임들에게 심한 견제를 받았다고 하였다.




나의 사정을 아는 중대장은 별로 반응이 없었고, 상사 중 한 분이 지나가다가 "야, 논문 짜깁기해서 대충 써"라고 해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학과 특성상 논문을 그렇게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군대에서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논문은 쓸 수 없고, 일단 나의 머리를 굳게 하지 않는 게 급선무였다. 또한, 당시 행정보급관은 내가 취침시간 이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군생활 소홀히 한다면서 나에게 쌍욕을 하였다. 그래서 당시 행정보급관이 기세좋게 SM3차를 타고 다녔는데 나는 그 차만 보면 옛날에 행정보급관 얼굴이 떠오르면서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으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논문은 고사하고 공부를 하는 게 이 중대에서는 혜택이 되는 문화였다. 군대에서는 은근히 비는 시간이 많아서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책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부대에는 책이 없어 집에서는 복사한 노트를 편지로 보내주었고, 대학원 선ㆍ후배들이 편지와 함께 멀티펜을 많이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 개의 노트를 건빵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둘로 잘라서 왼쪽 오른쪽 두 군복 바지 건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나는 틈 날 때마다 단어를 외우고, 다들 점심 먹고 낮잠을 잘 때 나는 책에 있는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어서 공부를 하였다. 휴가를 나가서는 짧은 머리하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전공책을 여러 권 빌려 편의점에서 부대로 택배를 보낸 다음에 반납 일이 될 때 운전병 동기한테 부탁해서 책을 반납할 정도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군대 갔다 와서 토익 스터디를 했을 때 팀원 중 곰신이 한 분 계셨는데 군인 남자친구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군대에 있었고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는 군대에서 컴퓨터 자격증을 5개를 땄고, 카투사도 아닌데 용산에서 근무하여 외박 때마다 시험을 보고 군대에서는 공부하는 걸 장려한다고 하였다. 이런 군대는 그 남자친구가 극도로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하여 같은 육군에서도 이런 혜택도 있다는 걸 나는 군 제대 후 알게 되었다.





우리 부대는 바쁜 부대가 아니었음에도 내가 공부를 하는 게 혜택이 되는 문화를 접하고, 나는 온 우주의 영역을 끌어서 나 자신을 설득하곤 했다. 88년생 유학파 한 모 씨는 한국어 발음이 서툰데도 자기는 경영학과라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면서 나와 동기들에게 갈굼을 일삼았지만, 군 생활 중 구타를 안 당해 봤다는 것에 감사함를 느끼고, 최전방 전투부대에서 고생하는 장병을 생각하며, 내가 군대에서 짬짬이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군대에서 28세에 입대해서 나이 먹고 개념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지만, 사회에서도 그 문화에 순응하며 생활하는 게 하나의 덕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아는 척하지 않고 때로는 유머를 섞어가면서 전반적으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시대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고 요새 MZ들도 회사에 들어와서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회사생활은 업무는 기본이고 그 문화 안에서 튀지 않게 집에서 놀랄 정도로 영끌한 이중성을 발휘하여 일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사 형이 예과시절에 선배가 운영하는 한의원에 직접 바래다주어 진맥 받아서 탕 정보를 알아오면 한약을 지어서 주었고, 나 아들 낳을 때도 산후 보약 지어주셨고, 얼마 전에는 우리 동네에 와서 스테이크도 사 주었다. 나 힘들 때 변호사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대학원 선ㆍ후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학우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 준 선배들이 많이 있어 대학원을 마칠 수 있었다. 훈련소에서는 다른 지도교수 후배들이 한 명 한 명 편지를 써 주어서 너무 감동이었고 선ㆍ후배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20대 초반에 동기들이 군대 갈 때 쓰던 편지를 나 때문에 30 나이 가까워서 편지를 쓰게 해서 개인적으로 선배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편지봉투 안에는 내가 필요했던 잘 굴러가는 볼펜과 문구를 보내주어 노트를 만들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대학원이 선ㆍ후배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까지는 아니었지만 회사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선ㆍ후배의 따스함을 대학원 때 가장 많이 느껴서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아 가끔은 옛날생각이 나면서 추억이 미화되어 눈시울이 붉어질 때까지도 있다. 나는 가끔 선배들이 그리워 오랜만에 선배들에게 전화하면 "보험 영업하는 거 아니다"라고 미리 말하고 "그때 감사했다"라고 말씀드리긴 하는데 그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다. 정말 고마웠어요!! 나중에 만나면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저 영업하는 직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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