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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 있냐? - 1

어.. 나.. 그렇게 됐어

by 정훈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까지 살면서 그 여파가 아직까지도 남아을 정도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졸업하고 대략 20여 년이 지났으나, 고3 친구들은 옛날에 내가 실수했던 일들을 악의적으로 꺼내어 내가 항의를 해도 그걸 지금까지도 연결시키면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어, 더 이상 대인관계는 의미 없을 것 같아 단톡방을 나왔고 연락이 와도 받지 않는다. 1편은 조금은 어색한 만남이었고, 2편은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반가웠던 만남을 적으려고 한다.



1. 고등학교 2, 3학년 은따의 기인이 되었던 친구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와 짝이었던 DK는 한창 친하게 지내다가 고2 때 나에게 돈을 꿔가서 안 갚았던 적이 있었다. 고2 어느 날 고1 여러 친구들과 노량진에 PC방을 가게 되었다. DK는 돈을 장기적으로 갚지 않아 나는 내 PC방 비용을 DK에게 충당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PC방 비용 계산하러 친구들과 카운터로 갔을 때, 나는 DK에게 내가 돈이 없으니 내 PC방 비용을 내라고 했다. DK는 여러 친구들 앞에서 돈 내라고 말하여 기분이 안 좋았나 보다. 그 이후 고1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DK는 나보다 입지가 좋았던 터라 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고1 친구들이 나를 빼고 친구집에서 축구게임을 하는 등 나를 멀리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그런 상황을 아는 그룹의 한 명의 친구가 등교 길에 악의적으로 나에게 "네가 그러니까 따돌림을 당하지"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친구가 그 그룹 이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나는 인생에서 중요했던 고2와 고3 시절을 묵묵히 외롭게 보내야만 했다. DK는 고등학교시절부터 공부를 잘하여 고3 현역 때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서 수능을 여러 번 봐서 내가 다니는 대학원의 대학교로 상향하여 다니고 있었다.



내가 잘 안 나갔던 고1 친구들 모임에 대학교 졸업할 때쯤 나가게 되었고, 나는 어렵게 대학원으로 진학하였고 고1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고1 그룹 친구들에게는 내가 대학원 간다는 이야기를 안 했고 그 대신 나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없어서 대학교 졸업하고 정부기관 임시직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대학원 진학하고 200X년 꽃이 피던 어느 날, 대학원 스터디 모임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봄소풍을 가기 위해 학교 근처 역 출구 앞에서 대학원 선ㆍ후배를 만나기로 하였고, 나는 역 출구 앞에 다다랐을 때 거기서 DK와 눈이 맞아 버렸다.


DK : 네가 여기 왜 있냐?

나 : 아............나 여기 대학원.......... 왔어........


나중에 고1 친구 그룹 중에 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그 대학교 나와서 그냥 대충 살 줄 알았는데 대학원 가서 의아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른 대학원 학우들은 공부하느라 같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과정대로 잘하여 학위를 받는데 나는 워낙에 기초실력이 없던 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





2. 먼 친척 (고모할머니 손녀)


어릴 적에 고모할머니댁에 가면 고모와 그 자녀들이 있었는데, 고모들은 형제와의 유대관계도 좋고 그 자녀들과 나이가 비슷하여 고모할머니 손녀끼리 해외여행도 가고 그래서 그런 가족그림은 내가 바라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고모할머니 손자가 입은 야구점퍼를 이쁘게 봐서 나에게 야구점퍼를 사준다고 했는데 그 손자는 리복을 사줬었고 나는 엄마가 리복의 반가격인 이랜드 주니어로 정하여 야구점퍼를 사러 매장을 가게 되었다. 옷 앞에 크게 "E"자가 박힌 야구잠바를 보고 리복 잠바보다 안 이뻐서 야구점퍼를 안 입는다고 하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지하철역의 개찰구를 빠져나가는데 매표소에서 어디서 많이 본 분이 계시는 거 같아, 나는 아는 척을 해 봤다.


나 : 혹시 민아 누나 아니세요?

민아 : 오 맞아 네가 여기 왜 왔어?

나 : 이 근처 대학원 왔어요..

민아 : 아 정말?


누나의 전화번호를 받고 나서 학교 앞에서 약속을 잡아 펀드이야기를 하며 치킨을 먹었던 것 같다. 이 누나와 같이 해외여행을 갔던 다른 고모할머니 손녀와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 손녀도 내가 고등학교 시절 버스 안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연락이 되어 반가웠다.



3. 고등학교 2학년 때 짝꿍


고2 때 나의 짝꿍은 우리 학교로 교환학생을 와서 만나게 되었다. 고2 때 짝꿍은 내가 외모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감히 힘없이 말한다면 나와 결이 다르지만 외모는 나정도 레벨정도였고 힙합을 좋아했으며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등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였고 글씨도 투박해서 나보다 공부를 못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두뇌체계가 한 두 수 위였다.

그는 나에게 래퍼 특유의 뼈아픈 저격을 해서 나의 맴이 찢어질 때가 있었다. "너는 너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치고 들어오면 나는 치사하게 "너는 가정교육이 그게 뭐냐?"라고 약간은 비겁하게 공격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 저격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20대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래퍼 친구를 학교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긴 했으나 나는 저격이 무서워 그 친구와는 겉도는 이야기만 하였고, 집이 같은 방향이라 집에 같이 가는 정도로 나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위의 2번 고모할머니 손녀와 래퍼친구를 지하철에서 만나게 되어 집에 셋이 가게 되었다. 고모할머니 손녀는 친구가 있는데도 나에게 "너희 아버지 아직도 술 많이 드시니?"라고 해서 안 그래도 나는 주위 친ㆍ외가 서라운드로 친척에게 가족끼리 많이 듣던 말을 심지어 친구 옆에서까지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수치심이 몇 곱절로 더 들었다. 나는 고모할머니 손녀에게 "아버지는 술을 조금 드세요"라고 했다. 왜 하필 힙합 마니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나는 또 저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고, 나는 그 이후에 고모할머니 손녀와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4.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율학습을 같이 하던 다른 반 친구


얼마 전 아침에 아내와 산책하다가 나는 아내에게 시럽 없는 두유말차라떼를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카페에서 그 친구가 나에게 오더니 "혹시 ○○고 나오셨어요?"라고 해서 나는 "오, 시래야.."라고 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 친구는 내가 대학원 다녔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여기 아는 형 학생증을 가지고 와서 공부한다"라고 했고, 그 시래를 20년 뒤에 동네에서 만나게 되었다. 시래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 내가 시래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했지만 육아 중에 바쁠 것 같아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시래의 집은 대방역 근처 아파트에 살았고 고1 때 같은 반은 아니었으나,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되면서 만났던 친구였다. 시래는 체격이 좋은 친구였고 에너지레벨이 높아 20년 전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해병대 가서 전역했다고 하였다. 고1 당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체구가 작은 영란이를 좋아한다고 하여 1학년 친구들은 시래가 영란이를 좋아한다고 거의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겉으로 봤을 때는 그 둘의 조합이 잘 안 맞아 사귈 줄 몰랐는데 둘이 사귄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이 겉으로 의아함을 드러내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5. 3학년 때 우리반 1등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야간자율학습을 하면서 알게 된 우는 안면만 튼 사이였다. 그런데 대학원 도서관에서 우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재수해서 이 학교를 오게 되었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나는 낙원이 있을 줄 알고 도망치 듯 집에서 가까운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 대신, 공동학군지역으로 학교를 멀리 다니게 되어 고등학교 시절은 안 해도 될 고생을 많이 하여 학업 및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야구에서 투수가 손에 공이 빠져 타자에게 폭투를 던지듯이 나는 고등학교 시절 폭투를 던져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는데 수습하지 못한 적도 많이 있었고, 지금도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폭투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은따의 늪은 깊어서 나는 사람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성격이 되지 못하였고, 반면에 혼자 있는 시간의 극한을 맛보아도 그 나름의 맛도 괜찮았다. 대인관계로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는... 어떤 그룹에 모여 있으면 타인의식이 심해져서 눈치밥을 많이 먹는 편이고 한정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친구들도 점점 불편해 져서 모임이 있으면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요새는 자발적으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다.


※ 다음 편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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