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만난 인연 덕으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래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반가웠던 인연과의 만남을 써 보겠습니다. 대학원 공부는 어려워 고전을 면치 못하였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1. 고등학교 1학년 때 모의고사 상위권이었던 JY
나는 남녀공학 합반인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키 크고 주황색 잔스포츠를 매고 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다.(이름은 "JY") 그 JY는 반에서 인기가 많아 JY를 좋아하는 남학우들이 많았고, JY는 자기가 자신의 인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를 정도로 학교생활을 조용하게 하였다. 어느 날 우연히 담임선생님 뵈러 교무실에 갔더니, 담임선생님 자리에는 모의고사 성적표 순위가 있어서 보았는데 나는 성적이 밑바닥이었고 의외로 JY는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 JY는 나와 다르게 티 내지 않고 조용히 공부를 했나 보다.
졸업 후 시간이 지나 내가 대학원 다닐 때의 어느 날, 학교 도서관 앞을 지나가는데 누가 나를 불러서 봤더니 그녀였다.
JY : 네가 여기 웬일이야?
나 : 잠깐 왔어
JY : 너 핸드폰 줘봐.
JY는 학창 시절에 내가 다가갈 수 없어 이야기도 안 해봤고, 그녀가 나를 안다는 게 신기했지만 JY가 번호 찍어주고 "연락해"라고 해서 당시 나는 그녀의 걸크러쉬 같은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번호를 받고 나서 내가 문자를 보냈던 거 같은데 그 이후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 나의 우상 MJ
고등학교 입학당시 우리 반 성적 1등으로 반장이 된 여학우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MJ였고 MJ는 3월생인가 그런 거 같은데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 같았다. 나의 이름은 여자같은데도 나는 굳이 내 소지품에 男이라고 쓰지 않는데 MJ는 자기 이름이 남자 같은지 스케치북에 자기 이름 밑에 女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MJ는 얼굴에 똑똑함이 묻어 났으며 말도 센스 있게 잘해서 나는 1번에 서술했던 인기녀보다 MJ가 더 멋지게 다가왔다. 학교 선배들이 동아리 홍보하러 1학년 우리 교실에 왔을 때, 나는 MJ와 같은 영어 동아리에 들기 위해 ETC라는 이름의 동아리 면접을 보았다. 동아리 면접 때 선배가 "ETC가 뭐의 약자예요?"라고 해서 나는 "Electric..." 이렇게 거의 3행시 수준으로 대답하고 불합격의 맛을 보았고, MJ는 ETC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아리는 선배의 인상이 다들 좋아서 내가 가면 좀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3월 한 달이 지나고 MJ가 전학을 가게 된다고 하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 학교 면학분위기가 좋지 않아 MJ는 담임과 학부모와 상의하여 전학을 결정하게 되었고, 서울 중심부에 있는 외고로 전학을 가게 된다고 하여 "역시 클래스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MJ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얼마 다니지 않고 조용히 외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MJ가 전학 후 오래되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어떻게 MJ의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MJ에게 전화를 걸었다. MJ의 동생이 전화를 받어 떨렸으나, MJ의 동생은 나한테 "(퉁명스럽게) 누구세요?"라고 해서 나는 MJ의 동생이 전화를 안바꿔줄 수도 있어 조금 쫄았는데, 그래도 두어 번 통화했고 외고 모의고사는 매 달 보는 것 같다는 기억만 남긴 채 그 이후로 연락은 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PC통신이 활발했던 터라 하이텔에서 MJ가 나에게 말을 걸어서 정말 반가웠고 MJ가 나를 기억해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온라인상에서라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리안에서는 그녀의 아버지 이름으로 접속을 하면 풍선 그림으로 팝업을 띄워줬지만 나는 굳이 연락 안 한 시간이 길어 천리안에서 말을 걸지는 않았고 MJ는 천리안에서 초ㆍ중학교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로 했었던 것 같다. MJ는 가수 박정현을 좋아한다 정도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한 1년 넘었을 때, 나는 학교 보험으로 병원비 청구하러 서류를 접수하는데 옆을 봤더니 지적인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여 싸이월드에서 어렵지 않게 이름을 찾을 수 있었고, 쪽지를 보냈더니 자기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아는 척 하자"라는 말을 남기고 설렘을 안고 학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 나이 때 여학우들은 거의 대학교 졸업반이라 학교에서 마주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내가 자주 공부하던 건물에는 PC도 이용할 수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어서 키오스크에서 PC를 사용하려고 배정을 받고 투명유리창 너머를 봤는데 그녀가 딱 있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말을 걸까 말까? 한 10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다가가서 보니 MJ는 "Before Sunset"을 보고 있었고 나는 "안녕하세요 저.."라고 했더니 MJ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MJ와 나는 키오스크 앞으로 잠시 나와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MJ는 법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내가 수능 본 당시 이 학교 법대에 진학하려면 수능문제 3개 정도 틀려야 이 학교 법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대학원 문과대학 여자선배가 같은 대학 학부 진학할 때 강남에서 전교 1등에 자기 수능 4개 틀렸다고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MJ가 미모도 아름다운데 사기캐같이 공부를 이렇게 잘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해 보니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전학하여 다른 학교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MJ는 만났을 당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시험이 끝나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MJ는 그 당시에 내가 다닌 고등학교를 잠시 다녔다는 것은 기억하였지만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였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본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했고 그 당시 학교생활에 고전을 면하지 못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 학교에서 그녀를 보아서 이 학교에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3.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교회누나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연구년이어서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1년 동안 미국에 있었고 그 친구가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자주 만나고 하면서 더욱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Y"라 할게요.) 내가 외롭게 대학원 다니지 말라고 그 학교에 다니는 Y의 친구 1명과 교회누나 1명을 소개해 주었다. 그 교회누나는 고등학교 선배였고 해맑은 나라고 쓰고 단지 "P"인 나에게 되게 잘해주었다. 교회누나와는 학교에서 자주 만났고 Y와도 셋이 같이 만난적도 있었으며, 심지어 교회누나가 일산에 뮤지컬도 초대해 주셔서 뮤지컬도 보러 갔었다. 교회누나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장영희 교수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보내주었지만 나는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고, 교회누나는 누구나 다 잘해주는 줄 알았다.
군대애 있을 때, 월 별로 쪼개져 있는 제본형 플래너와 반으로 쪼갠 노트를 건빵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공부 계획표를 빽빽하게 써 놨는데 이 계획표를 활용하여 4박 5일의 휴가계획도 치밀하게 짜냈고, 내가 군대 휴가 때 나와서 교회누나와 Y를 보게 되었다. 교회누나는 나의 빽빽한 플래너를 보고 겉으로 보이는 꼼꼼함조차도 되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군 전역 후 첫 번째 회사에 들어가고 퇴사할 때 즈음에 교회누나가 "너 누나 만나볼 생각은 있어?" "소개해 줄 사람은 나랑 중ㆍ고등학교 때 알던 친구야"라고 해서 내가 딱히 가릴 처지는 아니었고, 소개해주는 분의 성의를 봐서 교회누나에게 HJ를 만나겠다고 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HJ") 마침 소개팅 누나와 동네도 비슷해서 밥이라도 먹자는 생각으로 소개팅에 나가게 되었고 나는 HJ가 개그 욕심 내는 것 빼고 좋았지만 그래도 나의 직업이 뚜렷하지 않아 HJ를 안 만나려고 했는데 교회누나가 그래도 HJ를 3번은 만나보라고 해서 3번 정도 동네도 비슷하고 해서 HJ를 만나게 되었다. 결국에 나는 나보다 모든 조건에서 우월한 HJ와 상향결혼에 성공하게 되었고 우리 아들은 애들이 초등학교 가면 귀여움이 아기 때보다 덜 한다고 하는데 애들이 나보다 잘 생겨서 아직은 매일 안도의 한 숨을 내 쉬며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내 친구들은 결혼식도 하지 않은 나의 이 결혼이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지금쯤이면 이혼 소식이 들려와야 하는데 아직도 잘 살고 있어 친구들은 HJ의 희생정신이 뛰어나다고 평하기까지 한다.
옛말에 중매쟁이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뺨이 석대"라는 말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조금 낫지만 결혼생활 초반에는 나는 치기 어린 기세로 HJ에게 갑질을 일삼았으며, HJ는 나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이 있었다. 이럴 때마다 HJ는 교회누나를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앞으로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보려고 노력은 한다.
위에 ETC 회장님은 HJ와 같은 나이었는데 그는 무려 서울대에 갔다고 한다. 그 동아리는 공부 잘해야 들어간다고 했다.
참고로, 처남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처남의 제수씨도 같은 고등학교이고 심지어 아내의 오빠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처가집 식구 6명 내외 중에 5명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