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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사업아이템

잠깐 과일가게를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by 정훈보

2017년 채널A에서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게 되면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은 "고추기름으로 맛을 낸 만두"와 "과일"이었다. 오래되어서 그 당시의 이야기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과일가게는 사장님이 춘천에서 가락시장까지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고 샘플 과일을 먹어보면서 홍길동처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부지런하면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사과와 멜론을 먹고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과일을 생산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과일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리고 SNS에서 고등학교 동창의 목사님이 1톤 차를 끌면서 흠집과일을 저렴하게 파는 것을 보고 "열심히만 살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회사 오기 전에 컵과일 카페의 법인 회계 및 영업관리로 면접을 봤었고 그 당시 사장이 과일 유통은 생물이라 유통의 끝에서 업무 경험을 잘 쌓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로 면접 합격을 하였으나, 나의 간절한 제 2의 꿈은 회사를 애들 대학교까지 다니는 것이어서 그 회사는 시스템이 부족하여 경력이 쌓이지 않을 것 같아 그 회사에 가지 않았다.


24년 1월에 입지가 그렇게 좋지 않은 조그마한 신상 과일가게를 발견하여 사장님이 없는 무인가게인 줄 알고 바나나하고 귤을 바코드로 팔아 키오스크로 결제하여 샀다. 두 어 번쯤 갔을 때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장님한테 "저 과일에 관심이 많아요"라고 했더니 과일 장사의 비결은 "비싸게 사 와서 싸게 팔면 되는 것"이라고 한 큐에 정리를 해줬다. 그리고 장사 끝나고 도매시장을 가더라도 새벽에 여러 거래처를 다녀볼 수 없기 때문에 몇 개 못 가본다고 하였다. 그 당시 귤도 타이백귤, 효돈귤 등 귤도 종류가 많았고 새콤 3 : 달콤 7도 있고 비율대로 맛도 다양했으며 딸기도 처음 딴 딸기 먹어 보고 당도가 너무 좋아서 "내가 딸기를 이렇게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딸기도 금실,설향, 죽향, 장희 등 다양한 구성도 있고 생산지마다 맛이 달라 나는 딸기농장에서 갓 딴 딸기가 최고라고 생각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나는 바나나만 스위티오, 델몬트, 감숙왕, 풍미왕, 치키타, 로즈바나나 정도만 알고 있었지 딸기와 귤에도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집의 압권은 겨울의 고구마이다.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서 파는데 사장님이 그 당시만 해도 남은 고구마를 몇 개 싸줘서 퇴근 후 허기진 배를 두둑이 달래 주었고, 그래도 남아서 회사 직원들에게 주었더니 다들 뭐 탔다면서 의심을 했던 적도 있었다. 고구마는 베니하루카라는 종인데 이거는 일본 종(種)으로 알고 있다. 하나로마트에서는 이 종을 팔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외에도 스테비아 방토, 스테비아 밤, 페루망고 등 여기서 못 먹어 본 과일이 없을 정도로 과일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사장님 장사수완이 좋아서 단톡방에 공구도 엄청한다. 내가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전라도식 파김치"였다. 애들이 이 파김치의 파를 다 먹어서 양념까지 밥에 비벼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과일가게는 유명 맛집 사다주기를 하시는데 놀란 점은 첫째로 "이렇게 먼 곳까지 간다고?"였고, 둘째로는 "우리나라 맛집이 이렇게 많다고?" 그 정도로 활동반경이 크다. 나는 이 집 공구하는 것 모두 다 사면 통장이 거덜 날 거 같아서 사 먹지 못한다. 집에 밥과 술만 있으면 집에서 밥 해 먹기 번거로운 고객들은 이 집에서 사 주는 것만 먹어도 친구들 초대해서 사다 주기로 술도 먹고, 밥 먹고 간식으로 빵 먹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을 수 있다. 게다가 맛집 사다주기를 하기 때문에 지인들의 인기까지 얻을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혹해서 원래 우리 집은 과일을 일주일에 2만 원 정도 사는데 여기서는 5만 원 정도 사다가 겨우겨우 줄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모든 자영업자 및 사업하는 사람의 고민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지인이 맥도널드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어떤 계절에 어떤 버거가 인기 있는지도 몰라 발주를 잘 못 넣었다가 나중에 안 나가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한다. 맥도널드는 기성품이지만 생물인 과일은 정말 예민하다. 여름에 복숭아 같은 경우에 복숭아는 예민하여 유통기간이 짧다. 복숭아를 다 못 팔면 복숭아는 가격도 비쌀뿐더러, 멍이 금방 들어서 팔지 못하면 구매자가 다 로스를 안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과일도 어떤 날은 손님이 많이 오고 어떤 날은 안 오는 날이 있어서 이 수요예측을 하기 정말 어렵고, 이 과일가게는 박리다매로 마진을 잘 붙이지 않는데 생물인 과일은 재고가 남아 있으면 그 부담을 모두 사장이 안아야 한다. 그다음 날에는 매입할 자금이 부족하거나 사장님의 기분이 다운되어 덜 사 오게 되면 갑자기 고객들이 많아져 과일이 없어 고객들 발걸음을 돌리면 사장입장에서는 그것도 아쉬울 만하다.


그래도 이 과일가게는 사장님이 아줌마들하고 사이가 좋아서 서비스도 잘하는 것 같다. 나는 회사일이 바빠 과일가게의 꿈을 잠시 접었지만 과일가게를 하려면 이 사장님 밑에서 과일 보는 법 같은 것도 3년은 배워야 내 가게를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불경기에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잘 나가는 자영업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주위에 거대 자본의 경쟁업체가 생겨서 내가 이 과일가게에서 팔던 같은 공구상품을 경쟁업체에서 싸게 팔아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래도 이 아저씨의 과일이 좋아서 배송 실수와 재고관리만 조금 더 잘 된다면 나는 이 과일가게가 임대차기간이 끝나는 내년에는 큰 곳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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