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클래스가 다른 것 같다.
나는 중3 당시 서울 변두리에 살았고 당시 뭐에 씌었는지 고등학교는 서울 도심지역으로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가보니 그 지역 토착민과 이방인의 보이지 않는 텃세가 심하였다. 그래서 나도 외지인이라 자연스레 친구들도 외지인과 친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고3 시절에 그는 나의 거짓말을 저격하다가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동민이라고 하자. 동민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안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전학생이다. 동민이는 하체가 튼실하고 목소리는 미성인 친구였고, 누나가 많은 막둥이였다. 그래서 동민이는 하리수 노래를 잘 불렀다. 그의 아버지는 수도권 모 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다. 동민이는 그렇게 실력이 있지 않아서 모의고사를 보면 나보다 높은 점수지만 수도권에 있는 학교는 갈 수 없었다.
고3 어느 날 동민이는 전국 시 쓰기 대회에서 전국수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적인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하고 3명의 친구가 직접 시상식에 참석하여 동민이를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그 전국대회의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이 동민이의 아버지가 계셨었다. 동민이는 전국대회 대상으로 특기자 전형으로 수능 최저한 없이 서울 중위권 대학의 특기자로 입학을 하게 된다.
동민이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는 유럽여행을 간다고 한다. 누나가 영국에서 대학원과정을 이수하고 있어서 누나가 있는 영국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온단다. 그리고 동민이가 군대를 갔을 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자금이 부족해서 동민이의 면회를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내가 동민이의 면회는 못 가겠다고 하니 무리 중 다른 친구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에는 학교에서 강원도 인제로 버스를 타고 갔다. 친구들도 주머니 사정이 부족했던 터라 나는 친구들에게 얻어먹거나 하지 못했다. 동민이의 면회 후 나는 용돈이 만원도 남지 않았고 그 돈으로 한 달을 살게 되었다.
동민이는 군 전역 후 미국을 간다고 하였다. 동민이의 누나는 서울대학교 수석 졸업을 하였고 매형은 서울대학교 차석 졸업을 해서 미국에 동민이의 누나 내외가 미국으로 먼저 갔다. 동민이는 누나 집에서 거주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버인에서 어학연수를 하게 된다. 미국에 가서 당시 일본인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고 한다.
동민이와 같은 경우 결혼은 아무래도 누나가 많아서 그런지 취향이 그런 건지 모르지만 외국인과 하였다. 동민이의 아내를 만나면 에너지가 몇 배는 소모되었다. 이유는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민이 결혼식에 군대휴가를 잘라서 겨우 다녀왔다. 동민이와 나는 시차는 다르지만 같은 부대를 나왔고 내가 갔을 때는 고속도로가 없었지만 동민이가 부대로 올 때는 고속도로가 뚫려 4시간 거리를 2시간 만에 왔다.
동민이는 결혼자금이 부족하여 처음에는 독산동 집에 살다가 늦둥이인 동민이는 가족부양 조건으로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그러다 4년 전쯤 위례신도시에 청약을 받아 당첨되어 자기 집도 있는 동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과거를 건드렸다.
동민이는 악의는 없으나 오해할만하게 내가 타고난 부분을 가지고 놀렸다. 나는 잘하는 게 없어서 오래 살 거라는 이야기, 내가 공부를 못해서 애들도 공부 못할 거라는 이야기, 못생겼다는 이야기 등 노력으로 커버하기 힘든 나의 과거를 가지고 놀리는 동민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악의가 있는 게 확실하였다. 그래서 그 모임 단톡방을 나왔다.
동민이네는 알고 봤더니 집안도 대기업 임원이 많고 동민이 덕으로 내가 임플란트도 싸게 한 기억이 있어 동민이는 상위 클래스 인 건 인정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낙차가 큰 수직적인 관계에서 더 이상 대인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동민이에게 실수한 적도 많지만 나도 서운한 점이 많아 아무래도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동안 고마웠어 동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