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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살 현서의 호흡기 질환을 유치원 때부터 돌봐왔으니 주치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기관지가 유독 약해 걸핏하면 감기를 달고 다니는 현서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바이러스성 상기도 감염을 일반화한 감기는 허투루 방치하면 폐렴·부비동염·중이염 등의 2차 세균감염으로 합병될 가능성이 높아 쉽사리 대하다간 큰 탈이 나지만 대개는 자연적 치유가 된다.


자만해선 안 될 건강이지만 ‘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사람’이라는 뿌듯한 자긍심을 표하는 이가 있다면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니 칭찬의 맞장구를 쳐주어도 좋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로 감기에 대한 인체 면역력을 키운 결과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감기 바이러스는 200여 종이 넘기 때문에 딱히 치료제도 없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까닭에 항생제는 사용해도 큰 효과를 얻어내긴 힘들다. 어린 현서에게 과한 처방인 항생제보다 호흡기 비강 세척과 일상 속 위생 관리 당부만으로 치료를 대신하던 과정은 현서 가족의 동의를 얻기까지 지난했다. 항생제 처방은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만을 키울 뿐 과하면 탈이 난다는 진실이 입증되기까지는 시간은 길지만 결과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름에 찾아오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어도 여느 때와는 달리 통 내원을 하지 않던 현서를 퇴근길, 거리에서 만났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해맑게 인사하는 마스크 너머 현서는 단단했다. 급격히 기온이 내려간 근간에 감기에 걸리지 않은 현서를 보며 면역력 향상과 건강관리가 규범화되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에 정진할 뿐이다. 평소 항생제는 감기처럼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박테리아 감염에만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의학적 소신은 현서와 같은 환자들의 임상경험을 통해 더 또렷해졌다.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전 세계적인 항생제 남용은 예기치 못한 슈퍼 버그의 출현으로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의사의 과실이 크지만 유달리 급한 한국인들은 감기에도 무조건적인 약 처방을 원하고 있다. 투약만이 감기를 낫게 한다는 신성불가침의 의식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대개들 그렇다. 그럴 땐 힘겨워도 환자에 대한 이해와 설득은 의사의 책무이다.


정부가 내년 2월부터 청소년에 대한 ‘방역패스’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학부모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고등학생의 반대 청원에는 30만 명이 넘는 동의도 이어졌다. 접종 대상에도 오르지 않은 소아·청소년 464만 명이 코로나 감염 확산 과정에서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10대 감염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을 순 없는 일이다. 방역 현실은 엄혹하지만 학습권을 강조하다가 뒤늦게 안전을 내세우는 정책과정은 공감과 설득이 부재한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였다. 불신을 자초했다는 평가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전제인 개인주의와 비판 수용, 그리고 약자 보호와 자유민주주의를 꺼내들지 않아도 정부의 처신은 민주적이지 않았다.


소아·청소년 백신 안정성 관련, 국내에서 별다른 연구조사가 없는 실정이다. 백신을 접종한 고교생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확진자 발생이 많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당국 논리는 획일적이다. 자칫 열린 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목표는 맞으나 가치가 틀렸다. 정부가 백신 접종의 안정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경미한 두통·근육통부터 심근염 등에 대한 백신 이상반응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의 백신 접종은 신중하게 진행했어야 한다. 우려 해소 없는 압박 행정은 국민 반감만을 키울 뿐이다.


백신 접종은 탈정치적인 존재다. 백신에 대한 안정성, 그리고 부작용에 대한 정부의 전적인 책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국민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백신 접종에 대한 우려 속, 부모들의 주장은 몽니가 없다. 균형 잡힌 합리적 의심의 토대 위에 다른 의견에도 귀를 여는 게 정부의 바른 방역 자세다. 밤낮없이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지쳐가는 이때에 속상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하고 싶은 말, 아이들 백신에 대한 부모들의 의구심은 결국 나라의 책임이다. “부모님이 괜찮다면 정부를 믿고 아이를 위해 백신을 맞혀도 괜찮을까요?”를 묻는 것이 먼저다. 항생제 처방을 원하는 현서 가족에게 면역력 강화를 제안하며 건넨 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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