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침 책

아침에 잠에서 깨면 출근 준비로 분주했다. 행여 예약 환자가 기다릴까 조바심으로 허겁지겁 쫓기 듯 움직이는 게 일상이었다. 오랜 시간 계획해왔던 아니 동경해왔던 내면의 성찰을 위한 명상은 사실 여력도 없었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찌 보면 휴식보단 생존을 위한 수면과 기상에 치여 사는 내게 가까운 지인은‘미라클 모닝’인 새벽 기상을 권유한다. 그 장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 미라클 모닝’은 저녁에 소모하는 시간은 줄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수면패턴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수면시간을 줄이지 않고도 가능한 루틴이라는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육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의 량을 늘려가며 조절하니 어느새 이른 기상이 가능해졌다. 


근간의 나는 아침 5시면 침대 밖으로 깨어난다. 그렇게 획득한 아침의 시간은 병원으로의 출근 전 알토란같은 여백이었고 온전하게 나만을 위해 주어진 그 시간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가벼운 운동이나 그날의 일과에 대한 세밀한 계획도 가능해졌다.


인간에게 주어진 24시간의 시간 중 새벽의 시공간은 다르다. 타인과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계를 위한 일로 지친 상태도 아니다. 부질없는 잡념에 스스로의 평화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존재에 충실하고 싶다면 이른 아침의 기상은 글쓰기와 책 읽기를 허한다. 이를 통해 너덜너덜해진 의식의 해짐을 수선하며 곧추세울 수 있다. 


시간이 없어 책을 접하기 어렵다는 분들에게‘미라클 모닝’을 통한 독서를 권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스러운 삶 속에서 책 읽기는 모나고 날 선 말을 둥글게 안아주는 말로 개선해 어느새 고단한 관계들을 정화시킨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새날의 노동에 대한 유연함과 능률도 향상시킨다. 집단이라는 추상에서 개인이라는 구체로 눈높이가 낮아진 허우룩한 세상에서 관계의 미학 또한 안겨준다.


책 속에 내재된 수많은 언어들은 은유와 환유의 페스티벌이다. 은유는 세상 모든 일들의 유사성에 기초하고 환유는 감성의 인접성에 기인하기에 그렇다. 특히나 환유의 표현은 독창적 언어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문체의 심미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작가들의 노력에는 환유의 미려함이 있고 인간의 품위가 있다. 품격 없고 날선 언어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직설적 표현보다 환유적 표현이 상처를 덜 주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종국에는 처세에도 유익하다. 그러니 몸이 고단해서 시간이 없어서 책 읽기에 소홀했다는 이들은 책에서 생경하게 마주하는 품사의 향기가 영양제가 되어 사람 꼴을 반듯하게 연마하는 힘이 있음을 체감한다. 이를 느껴본 이라면 이른 아침의 독서가 그 어느 자기개발 방식보다 유용함을 체득한다.


독서는 내공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치장구가 아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감정을 고양시키는 글보다 무난한 태도로 납득을 구하는 글들부터 읽어 나가야 책과의 친밀도가 높아진다. 사람에 대한 알뜰한 시선의 글들도 좋다. 허나 뭐가 대수이랴. 독서 편식은 부질없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심 한복판에서 스마트 폰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세상사를 관조하는 한, 세상에 할 말은 독백이 된다. 인간은 그렇게 군중 속에 고독해진다. 그러나 가벼운 말보다 무슨 책이든 읽기를 택하고 듣기를 택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는 부드러워진다. 


독서에 고상함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호기심이든 시류이든 사둔 책을 빚지지 않고 읽어만 간다면 우리의 삶은 거푸집을 통해 단단하게 빚어진다. 그토록 비가 오지 않아 가뭄으로 애가 타더니 하늘에 천공이 난 것처럼 장맛비가 쏟아진다. 제대로 된 여름은 이후 시작될 것이다. 만화도 좋고 추리소설도 좋다. 철 지난 잡지 면 또 어떠랴. 집안 구석에 뒹굴던 묵힌 책의 먼지를 해방시킨 후 선선한 이른 아침을 펼쳐보자. 한여름 밤의 꿈속에 책 속의 주인공을 설렘으로 알현하리라. 

작가의 이전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