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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리포트]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

타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책도 그러하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음악만큼 한 시절의 풍경을 오롯이 담아낼 뇌 속, 메모리카드는 없다. 때로는 거칠고 모진 세상을 살며 아름다웠던 기억의 순간들은 인생의 자양분이다. 추억은 그렇게 흐르는 강물처럼 음악과 함께 흐른다. 흐르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노래도 가수도 그렇게 다들 흐른다.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지만 삶과 죽음은 가족에게 엄혹하고 타인에겐 사소하다. 그래서 음악은 때론 상처와 외로움에 지친 이들에게 격정적 눈물을 솟구치게 한다. 그래도 개념 치 않는다. 남사스럽지 않을 나만의 통곡이기에.        


누구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만의 노래가 있다. 페르소나인 가수도 있다. 음악은  먼 여정의 배낭 같은 존재이다. 즐겨 부르진 않아도 모든 이들에겐‘18번’이라 불릴 만한 노래가 있어 삶을 함께 한다. 황혼의 인생길에 서계신 부모님은 트롯 전성시대에 완벽 적응 중이시다. 아는 노래가 TV에서 나올 때면 나지막한 소리로 따라 부르신다. 부모님의 머릿속에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이 멜로디와 가사로 재현될  것이다. 노래 가사에는 청춘이 있고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고즈넉이 머문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움츠린 오늘,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이다.      


저마다의 삶에 천착해가는 세상살이에서 나만의 흥으로 읊조리는 노랫말은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된다. 노래뿐이 아니다. 지인들과의 술 한 잔, 속절없는 세상살이의 푸념도 그렇다. 서로의 생채기를 보듬었던 낭만 모임 이후 찾았던 노래방. 그 흔했던 도심 속, 동네 어귀 속, 그곳에서의 통성 노래의 일상마저 앗아간 코로나19의 시대를 살며, 다시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에 겸허해진다. 우린 너무 가까웠지만 소중한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채 살았다.       


계절 따라 황사바람에, 미세먼지에 간헐적이었던 마스크는 이제 생존의 필수품이 되었고 끼니를 도왔던 숟가락이 되었다. 마스크 없던 자유로운 일상의 사소함이 눈물 나게 그리운 근간이다. 정치적 레토릭에 휘둘린 휘황찬란한‘사회 변혁’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은 이동의 자유와 인간 군집의 연대였음을 통렬하게 체감한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언어도 마스크로 봉쇄당하지 않는 세상이다. 사소함과 위험함 사이를 오가는 삶의 무늬는 그래서인지 때로는 투박하고 질척거리기도 하다. 어쩌랴, 나이테만큼 코로나 시대의 인생도 굴곡진 것을.  

    

질퍽한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이탈의 싱그러움이 언제였던가. 소소한 험담에 마냥 웃어 제키며 가까운 이들과 흥에 겨운 모임은 또 언제던가. 흔하고 흔해서 그 위대한 풍경을 우리 너무 잊고 살았다.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은 박제된 채, 우리의 닫힌 삶을 서글프게 응시하고 있다. 

    

돌아보면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눈물을 잉태했고, 아이들의  새 학기를 빼앗아갔다. 숱한 인파로 뒤덮였던 도심 거리는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의‘눈먼 자들의 도시’속 풍경의 데자뷰이다. 코로나19는 그렇게 당연시되던 일상을 침탈하고 그 공허한 빈자리에 절망의 슬픔을 적재해두었다. 이 서늘하고 거친 역병이 물러간 다음 우리 사회는 거대한 변혁을 요구받을 것이다.     


백신만으로 제거되지 못할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히 관계를 서늘하게 할 것이고  여전히 가짜 뉴스와 혐오의 언어들은 유난을 떨 것이다. 서로 간의 고립된 시간은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결별 후유증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거리 두기의 음습한 강제는 참으로 불편한 것이었지만 기찻길 건널목에서 잠시 멈춰 설 여유도 부여했다. 마침내 기차는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다시 그 철길을 건널 것이다.        


너무도 익숙해서, 사소한 것들의 그리움. 그 위대한 삶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재현시키는 일, 그것이 곧, 인생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대, 힘에 부쳐도 우린 함께 건너갈 것이다.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을 자각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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