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은 마음의 빚을 남긴다. 책 내용의 교감을 기대하고 건네는 이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더더욱 그렇다. 책 선물을 받아 들고 세 달이 지나서야 유교적 시대상의 장벽에 부딪쳐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 선비들의‘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를 지난 주말에 읽었다.
마음에 빚도 덜었다. 사상, 제도, 신분의 벽 등으로 인해 삶의 자유가 핍박당했던 부박했던 시대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삶에 충실했던 지고지순한 선조들의 삶은 곤핍한 내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편하고 안전한 길을 뒤로하고 세상을 나답게,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소신에 관한 성찰의 마중물이었다. 윤리와 수익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개원의로서의 의사의 삶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초심의 마음을 지탱해야 된다는 확신도 확인시켜주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수많은 이해관계의 혼탁한 충돌 속에서 유연한 타협이 융통성이 있으며 올바른 처세라고 말한다. 얼핏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이에 반해 책에 등장하는 12명의 조선 선비들은 소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등장하는 이들은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이보다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삶이 어디 있을까 싶다. 범상치 않은 일이지만 가야 할 인생의 좌표이다.
인생의 지난한 시련의 과정들은 용해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연스레 확장되기 마련이다. 당면한 현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욕심 가득한 세속에 덜 흔들리는 존재로서 주관 있게 인생을 살아내는 내공은 사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에 그 힘이 있다. 그것이 소신일 것이다. 굳건한 소신은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비이성적 일들에 대해 속절없이 휩쓸리는 우를 범하는 가능성을 낮춰준다. 자존감 있는 인생의 동력이 된다. 소신은 마음의 힘이다.
여타의 민족과 달리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 민족은 개인으로서의‘나’보다 집단으로서의‘우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때론 그러한 기질이 국난의 시기 위기를 넘어서는 힘으로도 발현되지만 집단 내 관계 욕구 수준이 높다 보니‘소신’보다는 집단 의견에 순응하며 따라가는 것이 올바른 처세임을 강제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면 개인으로서의 존재의 가치는 집단주의에 의해 점차 유실되어간다. 개인의‘소신’이 존중받고 통속적인 것들에 오염되지 않는 인간관계, 코로나19가 야기한‘관계 상실의 시대’에 되돌아 볼일이다.
누구나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타인과의 갈등이 못내 부담이 되어서 비루하게 정의를 피해 갔던 지난날의 아니 어쩌면 지금도 진행형일 수 있는 굴절된 유연함이 부끄러워지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강하면 부러지는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올바른 처세라 믿어 갔던 타협적 생각들은 사실‘소신’의 상실이었다. 생각과 행동의 괴리, 일상의 모든 부조화에 불편해하면서도 끝내 정면 돌파를 피해 갔던 말갛던 존재의 민낯에서 자유로운 이가 그 얼마나 있겠는가.
집단에 기대어 휩쓸려가는 망연자실함에 직면하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 결코 정의롭지 않은 현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배려는 사라져 가고 있다. 획일적 사회문화와 집단주의는 자칫 공동체의 이름으로 허울 좋은‘연대’로 포장되지만 자발적 참여가 충족된 열린사회로 나아가지 못한다. 보편적 상식 위에‘소신’있는 이들을 존중해 주는 문화가 부재되어 있다면 제대로 된 시민사회는 오지 않는다. 의사사회도 그러하다.
‘소신’은 모난 돌이 아니다. 공동체, 건강함의 척도이다. 전범국가로서의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를 비판하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자격이다”지극히 옳은 말씀. 소신과 처신 사이, 의사로서의 자격을 돼 뇌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