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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Jan 10. 2022

차와 코리안 프라이스

위타드 매장 정식 오픈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작년 말부터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핫한 소식은 영국 차 브랜드인 위타드가 한국 정식 수입을 개시하여, 강남 상권에 매장이 오픈된다는 것이었다. 손꼽아 매장 오픈을 기다리던 한줌 차덕후들이 포트넘 앤 메이슨보다 더 비싸다며 실망하는 데는 단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 정식 수입 차를 구매하려면,  현지가보다 제법 비싼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 일단 차를 수입하는 경우 온갖 비용  관세가 높기도 하고,  문화 자체가 매니아층 위주로 좁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고급 브랜딩을 해야 그나마 살아남을  있어 그런가 하는 의심도 널리 퍼져 있다.


해외 쇼핑몰에서 직구하는 경우 개인 수입 및 통관 룰이 적용되어 150$까지는 정식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데 들 비용이 빠지게 된다. 블프나 쌍십절 같은 이벤트 시즌에는 해외에도 무료배송해주기도 하고, 차는 보존기한이 길기 때문에 나처럼 차를 많이 소비하는 개인으로서는 최대한 가격이 쌀 때 한번에 '직구로' 많이 사서 쟁이는 패턴이 된다. 헤비 유저마저 정식 수입처를 외면하는 현실에, 매장을 작은 규모로 냈다가 철수하는 해외 차 업체들이 많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루피시아, 니나스, 포숑은 철수했고, TWG도 청담동에 건물 전체를 쓰면서 티룸을 겸하는 큰 플래그십 매장이 없어지고 작은 크기의 매장만을 유지하고 있다.

라떼는.. 청담동에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TWG 티룸이 있었어...(2015년)
에그 베네딕트랑... 아이스크림이랑... 샌드위치도 팔았어.....ㅠㅠㅠㅠ 엄청 맛있었는데...


새로 오프한 위타드도 코리안 프라이스의 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현지 가격과 한국 가격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 가격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whittard.com/ 에서 참조하고, 한국 가격은 위타드 삼성타운점 http://naver.me/FWv0KvZM 에 방문한 나의 기억에 의존해 보았다.


차 (카멜리아 시넨시스 계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얼그레이

잎차 100g / 영국 14,200원 한국 22,000원

티백 25개 / 영국 12,000원 한국 18,000원

잉글리시 로즈, 피카딜리 블렌드

잎차 100g / 영국 16,400원 한국 22,000원

티백 25개 / 영국 13,100원 한국 18,000원

첼시 가든 (백차)

티백 25개 / 영국 13,100원 한국 18,000원


차 (허브 & 인퓨전)

베리베리 크러쉬, 레몬앤 진저, 피치/라즈베리&로즈, 엘더플라워&애플

잎차 120g / 영국 13,100원 한국 20,000원


핫초코

전 품목 (11종)

영국 19,700원 한국 20,000원


쿠키

전 품목 (4종)

영국 17,500원 한국 22,000원


그 와중 핫초코는 영국이나 가격이... 큰 차이가 없네요? 매니저님 말로는 차보다 핫초코를 그렇게 많이 사간다더니 한국인은 역시 단 것에도 진심이지만 가격비교에 너무 진심인 것이다.(....)


한국에서 그나마 제일 잘 되고 입점 위치가 비슷한 twg와 비교해 보면... 옛날 플래그십 매장 있던 시절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그냥 잎차 봉다리만으로는 판매하지 않는 것 같으므로 잎차 말고 티백으로만 비교해보면 싱가폴달러 28(약 24,700원)인 대표 티백 제품들을 한국에서는 34,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홍차 티백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약 1.38배 정도로 위타드와 twg가 한국 수입 판매에 거의 동일한 배율을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개인으로 따지면 직구해 먹는 게 "가성비적으로" 이득이다. 하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국 시장에 직접 들어온 업체를 외면하는 게 정말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까?


한국에서 차를 마신다는 건 대부분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나쁜 경험을 사는 일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 체인점에서 차를 주문하면 1회용 종이컵에 티백을 담근 상태로 내준다. 차는 우리는 시간에 민감하기 때문에 좀 들고다니거나 테이블에 두고 있으면 급속도록 떫어져 맛이 없어진다. 게다가 티 꽁다리에 카페 브랜드나 의문의 로고가 찍힌 티백 담근 물을 마셔본 바에 의하면, 마트에서 파는 트와이닝스나 립톤보다 좋은 품질의 차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놀랍게도 이 좌절스러운 품질에 아메리카노보다 천 원 이상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놀랍게도 원가는 커피보다 비싸다고...)


차를 취급한다는 개인 티룸은 전문성 있는 훌륭한 경험을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대부분 아니다. 대부분 비싼 건 둘째치더라도, 일단 차 온도와 우리는 시간, 보관 상태가 맞춰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업장을 운영한다면 해외에서 운영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150$씩 쪼개서 살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생산 업체에서 공식으로 수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입했는지 불투명한 개인 온라인 판매자에게 살 수밖에 없다. 헤비 유저라면 직구를 이용하겠지만,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접근성 면에서 장벽이 높으므로, 첫 입문자는 차의 품질을 보증하기 어려운 판매자에게 비싸게 산 뒤 "에이 커피나 마시지 내가 뭘..." 하고 돌아서기 쉽다. 샤이니의 키가 마르코폴로주를 유행시켜도 단기적 신기한 붐으로 끝나고 만다. 한국에서 마리아쥬 프레르 제품은 2.5배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개인 판매자만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대만차는 이런 면에서 사정이 더 나쁘다.


아무래도 차가 우리 나라보다 대중적인 일본에는 마리아쥬 프레르 등 주요 차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샵과 티룸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여행을 가서 굳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홍차를 집어온 적도 많은데, 대로변에 있는 플래그십 샵, 백화점, 마트에서 1.2배 정도의 훌륭한 가격으로 쉽게 차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차 브랜드에서 공식 티룸을 운영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 티룸들에서는 잘 보관된 찻잎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려주고, 티푸드들의 품질도 가격대비 높다. 이런 대형 브랜드 티룸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으니, 당연히 개인 운영 티룸들도 퀄리티가 높다.

도쿄에서는 디저트 업체인 라뒤레에서도 티룸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라뒤레도 철수...


코로나 시국이라 시음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새로 오픈한 위타드 매장에서는 테이크아웃으로라도 5천원에 매니저가 직접 우린 정식 수입차를 마셔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똑같은 종이컵이라도 입천장이 데일 것 같은 팔팔 끓는 물에 정체불명의 티백을 무성의하게 담가서 바로 주지 않는 데서 오는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컵에는 빨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잎을 꺼내서 뭔가 있을 것 같은 매뉴얼에 따라 우리는 게 한국에서는 너무 신기한 광경이었다.

위타드에서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메뉴. (출처 : 네이버 지도 내 매장 정보)
위타드 매장에서 구입한 차와 테이크아웃 잔.

해외여행도 못가는 시대에, 늘 집구석에서 혼자서 차를 마실 거면 정식 수입 가격 말도 안되게 비싸니까 직구나 하자~ 그런 소리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남이 우려준 차를 적당한 가격에 마시는 경험을 영원히 안 할 셈인가? 언제까지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고 개인 업자에게 보관 상태가 불분명한 차, 중국차라면 생산자마저 불분명한 차를 살 건가?


위타드는 핫초코나 커피 라인업도 있어서 철수 걱정은 덜 해도 될 것 같지만(...) 위타드 주제에 포트넘 직구가격보다 더 비싸다는 말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일들이 생각난다. 잡다한 취미 분야를 파고들다보면, 인터넷에 매니아가 좀 있는 것 같아서 정식으로 들어왔다가 "가성비"따지는 한국 헤비유저들이 철저히 외면해서 철수한 업체를 여럿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외연이 넓어져야 장기적인 경험이 좋아질 수 있다. 수입차에 붙는 징벌적 수준의 관세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차 열심히 일부러 찾아마시는 사람들도 차 문화나 생태계에 대한 고려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호 식품이니 개인의 지갑사정이 우선되긴 하겠지만, 누구보다 차를 많이 소비하는 헤비 유저들을 제외해도 되는 시장은 내실 없는 허세로서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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