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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Jun 26. 2022

차판 사기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배송대행지 없이 타오바오 직배송으로 사본 1인용 차판

중국식으로 차를 마시다 보면 버리는 물이 꽤 생긴다. 찻잔과 다구를 데우는 데 쓰고 버리고, 돌돌 말린 차를 살짝 씻어내고 펴준 뒤 버리는 식이다. 게다가 나는 곰손이라 작은 다구들을 쓰다보면 물을 질질 흘리기 일쑤다. 개완에 뜨거운 물을 붓다가 흘리고, 개완(또는 다관)에서 공도배로 옮기다가 물을 흘리고, 공도배에서 찻잔으로 옮기다가 물을 흘린다.


이걸 밑에 깔아놓은 차판에 슉슉 버리고 흘리면서 하는 관대한 방식을 습식이라고 하고, 물그릇에 조심스럽게 버려야 하는 방식을 건식이라고 한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사서 건식 찻자리를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근본이 게으름족에 물많이흘림족이라 10번 중 9번은 대충 차판 하나 깔아놓고 마시게 되었다.

물많이흘림족 특징 : 우아한 찻자리 불가

나는 처음에 대만우롱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일롱에서 작은 대나무차판을 사서 썼다. 그러나 대나무 자체가 물에 대한 내구성이 좋지 않은지, 사용 빈도가 많아질 수록 위쪽이 갈라지다가 아래쪽에서 물이 새는 엔딩을 맞게 되었다.

내가 처음 샀던 작은 일롱 대나무차판과 물바다.
결국 찢어지고 갈라지고 물새는 엔딩을 맞이한다

원래 대나무 차판은 소모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수입업체에 비싼 가격에 사거나 타오바오에서 힘들게 사야 하니 소모품처럼 대충 싼거 사고 치운다는 발상이 어렵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저런 비용 생각하면 3-4만원은 드는데, 1년만에 물이 새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써왔던 차판과 다른 제품을 사보기로 했다.

수입상 입장에서 차판의 부피와 무게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만, 중국돈 2만원짜리를 8만원에 살 생각을 하니...

차반 茶盘 으로 검색해보자

타오바오에서 차반 茶盘 으로 검색해보면 다양한 재질을 선택해서 찾아볼 수 있다. 금속/돌 재질, 원목, 도자, 일체식, 흑단목, 전목이 있고 대나무나 자사 재질도 따로 필터링할 수 있다.


대륙인과 대만인과 한국인의 조건이 사맛디아니할쎄

그렇게 타오바오를 탐색하다보니 대륙인들은 나와 꽤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 찻자리가 고정이라 차판을 들고 이동할 필요가 없다.

2. 그릇을 막 깨먹지 않는다.

3. 1인보다는 2인 이상의 찻자리가 기준이다.

4. 무게당 배송비가 빡세게 올라가는 해외배송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막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이나 도자기 차판 같은 것을 막 쓰는 것이 대륙인의 간 to the 지였다. 심지어 저렴하고 작다는 나무 차판 나부랭이같은 것도 a4사이즈 비슷한 사이즈 및 비례였다.

아무래도 대륙식 간지를 추구하긴 글른 듯 했다

대륙인과 다른 나의 조건은 이러했다.

1. 차마실 때 까치발을 들어 찬장 위에 있는 차판을 꺼내 와야 한다.(찻자리 위치가 고정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한손으로 들 수 없는 무게라면 손이 잘 안 가게 된다.

2. 그릇에 대한 나의 조심성을 믿을 수 없고 심지어 잘 떨어뜨리거나 달그락대는 편이다.

3. 고독한 혼차인이라 차판 자체가 넓지 않은 게 유리하다.

4. 해외배송은 무게가 올라갈수록 배송비가 빡세다.


그러니까 한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 작아야 하는데 도자기나 돌로 만든 건 얇은 다구를 쓰다 깨먹을 것 같아서 나무 재질이어야 하지만, 세차가 필요한 우롱차 주력인데 물을 많이 흘리니 저수용량도 많아야 하고 못생긴 것은 싫고…. 추천하거나 조언을 주는 사람이 짜증나니 꺼지라고 해도 할말이 없는 조건이다.

결국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며 저렴하기까지 한 건 못생긴 스뎅차판 뿐 ㅋㅋㅋㅋ

결국, 나무 차판

가볍고 너무 비싸지 않되 덜 못생기고 대나무보다는 오래 갈 것 같은 나무 재질 차판을 찾아보기로 했다.


(광의의)나무 재질 차판은 흔히 전목, 호두나무, 흑단목, 화리목, 대나무 등으로 나뉘고, 물을 아래쪽 상자에 저장해두는 방식과 호스를 연결해 별도의 물통으로 빼는 방식이 있었다. 차를… 얼마나 많이 마시면 물통으로 뺄 정도로…?

차판의 상하단이 분리되지 않고 호스로 따로 물을 빼야 하는 방식으로 배수식 排水式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또 물을 상자에 저장해두는 방식도 상다리 모양 하단에 넣고 뺄 수 있는 플라스틱 서랍이 있는 방식, 기존에 내가 쓰던 것처럼 그냥 나무 상자에 물을 받아두는 방식이 있었다.

여닫이 플라스틱 서랍이 있는 방식과 상판과 서랍이 분리되는 방식. 아무튼 하단 서랍에 물을 저장하는 방식을 저수식 储水式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전목电木”이라며 나무가 아니라니

보이차를 많이 마시는 어르신들이 흔히 쓰는 건 전목 차판이다. 엄청 비싼 가격 및 전목이라는 이름과 달리 나무가 아니고 압축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뜨거운 물에 내구성이 강하다고…. 어쩐지…. 비싼데 못생겼더라…. 심지어 무게도 엄청 나간다고 한다. 패….스….

조심성 없는 물흘림족의 1인 차판 고르기

대나무보다만 덜 갈라지면 돼! 하는 생각으로 화리목, 호두나무, 흑단목 등 재질로 찾아보니 대나무보다 비싸지만 색감이나 모양이 예쁘진 않다. 이건 어쩔 수 없다. 플라스틱이나 스텐이 받쳐주는 서랍형이 물이 안 새긴 하겠지만 서랍이라는 게 있으려면 차판 크기가 최소 a4는 돼야하는 것 같다. 혼자 마시기에 지금 쓰는 차판보다 커봐야 무겁고 거추장스럽기나 하다. 이쪽도 제외하기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면적 대비 물 붓는 구멍이 작은 것을… 귀엽다고 사면 안 된다. 이 차판은 아래 서랍으로 물을 내려보내는 기능이 부족하고 받침 위에서만 물이 돌다가 물이 초록색 플라스틱 밑으로 들어가 썩고 말았다. 그래서 최대한 얇은 살이 상단을 덮은 형태의, 개완 하나 공도배 하나 잔 하나 들어가는 최소사이즈로 압축했다. 쓰던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이 되겠지만.

이렇게 생긴 건 더러워지고 망가지고 무거워서 안되니
백 투더 베이직

결국 차판듀스101을 거쳐 내가 고른 차판은 두 가지였다. 원래 둘 중 하나만 사고 싶었지만 선택 실패의 가능성을 대비해서 둘 다 사게 되었다. 일단 모양은 2가 마음에 드는데, 무거워보일 게 확실하면서도 서랍에 저장할 수 있는 물 용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팔지 않으니 상관 없어서인지 거의 모든 가게가 제품의 무게를 기재하지 않은 상황.

한편 배송대행지인 몰테일을 이용하기 귀찮아 최근 생긴 타오바오 직접배송을 이용해보고 싶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적으로 교환반품이 어렵다. 어차피 국내에서 사도 8만원이니까 8만원에 두개 사~~~ 나무에 뜨거운 물 붓는 제품은 뭘 하든 결국 소모품이야~~~~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1번 차판

1번 차판

가격 : 131위안 (약 2.5만원)

사이즈 : 35x13x4cm

재질 : 화리목

저장용량 : 900ml


2번 차판

2번 차판

가격 : 274위안 (약 5.3만원)

사이즈 : 36x16x3.8cm

재질 : 상판 화리목, 받침 계시목

저장용량 : 500ml

특이사항 : 상하판 분리와 호스로 물빼기 둘다 가능


타오바오 직배송

원래 해외 거주자가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사서 받으려면, 배송대행 업체를 통해 중국 현지 주소를 등록한 뒤 따로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타오바오가 직접 해외로 배송해주겠다고 나선 것. 일단 주소를 한국의 어딘가로 등록해 두면, 가게마다 해외배송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한국 배송을 안 해주는 경우(좌) 해 주는 경우(우)

한국 배송이 되는 판매자의 물건을 담아서 결제 단계까지 갈 경우, 배송 옵션은 세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타오바오 지정 배송사가 한국 직배송

국경의 타오바오 물류창고로 육로를 통해 국내배송 뒤 지정 배송사가 한국배송

판매자가 직접 배송 (ems 등 사용)

배송 옵션 선택화면

타오바오 지정 배송사를 이용하면 뭘 하든 ems보다는 싸지는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육로를 일부 이용하는 두 번째 옵션이 더 싸다. 처음에 이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해 판매자가 직접 배송해준 적이 있었고 180위안을 지불했었다. 차판은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 부피와 무게가 커지기 때문에 무조건 두번째 옵션으로 선택했다. 이 경우엔 17위안… 인줄 알았는데 무게가 초과되었다며 돈을 더 내라고 했다. 아무튼 몰테일이나 직접배송보다 무거운 물건을 받을 경우 이쪽이 제일 싼 건 확실한 것 같다.

17위안에 57위안의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 그렇다 해도 무게가 거의 안나가는 가벼운 제품을 받을 때의 몰테일 비용과 거의 비슷하다.

스토어마다 한국으로의 배송 가능 옵션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스토어에서 동시에 주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이번처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제품을 들여올 때는 가격 면에서 확실히 유리해 보인다.

해외배송을 이용할 경우의 배송 안내. 배송의 각 단계별로 정보표시가 명확하게 되는 편이다.

이렇게 나름 시스템은 잘 되어 있지만 갑자기 일요일에 홍콩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게 되는데…? 중국어로 솰라솰라하는 데 당황해서 저 중국어 못훼요~ 를 영어로 겨우 말하는 데 성공하고 파파고가 함께하세는 안정의 타오바오 메신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니… 타오바오가 제시한 입력 방식대로 입력한 한국 주소를 국내배송을 담당하는 CJ로지스가 인식을 못하니 따로 한글 주소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메신저로 보내주고 나서야 배송이 재개될 수 있었다.


중국 배송은 뒤로 굴러도 앞으로 굴러도 2주일

결국 6월 7일에 결제해서 21일에 받았으니, 딱 2주 걸린 셈이다. 몰테일을 이용해도 큰 문제 없을 경우 딱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직배인 fedex나 ems를 이용해도 이 정도 시간이 걸릴 때가 제법 있다. 다른 동네에 비하면 아무래도 답답한 속도긴 하다. 그래도 배송비가 싸긴 해서, 도자기 제품같이 검수가 꼭 필요하거나 여러 샵에서 자질구레한 걸 주문하는 경우가 아니면 또 이용해봄직한 것 같다.


차도구는 결국 기부니즘

결국 비싸고 무거운 차판의 승리로.

2번 차판이 두 배로 무겁지만 한 손으로는 들 만 하고, 1인 찻자리를 하는 내가 최대 버리는 물이 500ml였고, 만듦새가 더 나아서 이쪽을 더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조금이라도 더 넓은 범위에 촘촘한 구멍이 뚫려있는 게 사용성에서도 더 나은 것 같다. 2번 차판과 함께 호스가 왔는데 언젠가 쓸 일이 있으려나…? 결국 견딜 수 있는 조건 안에서 조금이라도 예쁜 것을 고르게 되는 기부니즘의 승리였다.


적절한 물건을 고르는 게 까다로워서 당분간은 안 사고 싶지만 호승, 차판, 퇴수기 류의 물 받아주는 도구는 결국 이것저것 무한반복하며 사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한량의 취미이면서도 게으름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 다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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