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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ug 01. 2022

게으름뱅이는 여름엔 냉침차만 먹는다

가장 빠르고 쉽게 차를 소비할 수 있는 방법

습하고 더운 여름이다. 차를 차갑게 먹는 방법이라면 대표적으로  가지가 있는데, 뜨겁고 진하게 우려진 차에 얼음을 넣는 “급랭 찬물에 차를 담가놓고 오랜 시간 우리는 “냉침이다.


게으름뱅이는 아무래도 냉침이 유리하다. 예전엔 500ml짜리 뚜껑달린 유리병에 우렸다면, 요즘은 그냥 1리터씩 우려 식사에 반주처럼 먹다보면 하루에 다 마시고 만다.


급랭이 차가 가진 향과 맛을 많이 살린 상태로 차갑게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 냉침은 떫은 맛을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에게 적합하다. 보통 홍차는 8시간 우리라고 하는데, 일반 뜨신물에 차 우리듯 시간에 예민하지는 않다. 24시간 지나서 먹기도 하고 48시간 지나서 먹기도 한다.


냉침 국룰은 차 1g에 물 100ml

준비물 : 1리터 유리병, 다시백(중), 소분해둔 찻잎

냉침병은 경험상 유리인게 좋은데, 플라스틱 대비 열탕소독에 유리하고 서로의 색상과 향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사라지고 없어 냉침차

내가 쓰는 제품은 루미낙 저그 물병이고, 그냥 적당한 가격에 쓰기 편하다. 단위가 1리터가 된 이유는 순전히 내가 차를 소분할 때 10g 단위로 소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마실 때는 한번에 마실 수 있는 분량인 500ml짜리가 적당할 지도 모르겠다.

https://m.luminarc.co.kr/product/%EC%95%84%ED%81%AC-%EC%A0%80%EA%B7%B8-%EB%AC%BC%EB%B3%91-1l/309/

다시백에는 찻잎 5-10g을 넣게 되는데 웬만한 건엽은 다시백 중사이즈에 들어간다.(소사이즈엔 다 안들어감 주의) 요즘은 다시백도 환경친화적으로 썩지 않는 걸 만들던데 그런 것을 써도 좋겠다.

티백을 쓰는 경우라면 1리터당 3-4개 정도를 쓰는 것이 적당하다.


유리병에 다시백에 넣은 찻잎(또는 티백)에 물을 부어 4-8시간 정도 냉장고에 보관했다 마시면 끝이다. 대만의 청향 계통 우롱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냉침했을 때 맛이 상쾌하고, 너무 오래 담가두어도 맛이 나빠지지 않는 점도 있다. 대만에서 마셨던 문산포종 페트병과 맛이 비슷해진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카발란과 냉침 대만우롱차를 매치해 마셨던 어느날

냉침과 궁합이 좋은 차들

보급형 차들은 모두 ok

섬세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대부분의 보급형 차들과 꽃가향을 했다는데 이건 화장품인가 싶은 차들, 단맛이 나는 과일 가향차들이 잘 어울린다. 사실 나는 시음 없이 산 차가 따뜻하게 우려먹기 좀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부터 막 찬물에 풍덩풍덩 담그고 그래도 맛없으면 설탕을 타먹는다. 아직 설탕이 필요할 정도의 차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래서 차를 많이 사는 데 비해 버리는 차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향과 맛이 섬세한 차는 찬물에 풍덩풍덩 담기 미안해서 좀 오래 남았다가 상미기한 얼마 안남았을 때 급하게 해치우는 편이다.


인퓨전은 온침보다 냉침이 맛있어

과육과 허브 꽃 등을 섞은 유사차를 인퓨전이라고 하는데, 이 제품군은 영국의 위타드가 제일 많이 내고 맛도 괜찮은 편이다. 카페인도 없고 수분 보충에도 유리하다.(냉침차 먹어도 여름철 물은 따로 잡숴야 한다) 위타드 베리베리크러쉬(구 베리베리베리)는 탄산수에 냉침해먹어도 괜찮은데 뚜껑을 열어 탄산수를 한 모금 마셔 탄산을 살짝 빼고 찻잎을 넣은 다음, 뚜껑을 너무 꽉 잠그지 않은 상태로 적당한 시간을 보관해야 한다. 나는 이 “적당”을 아직 못찾아 샴페인보다 더 엄청난 거품이 터져 흐른 상태로 마실 때가 많긴 하다.


긴압한 차들은 잘 우러나지 않는다

딱딱하게 초콜릿이나 동전처럼 압축한 차들은 찬물에 잘 풀리지 않는다. 24시간 이상 우려보아도 1-2시간 냉침한 것 같은 맛이 났다.


섬세한 고급 차들은 냉침하기 아깝지만

어떤 방법을 쓰든 1g에 100ml 정도 우리는 건 똑같은데도 단가가 비싸면서 향과 맛이 섬세하고 여러 레이어가 들어있는 차들은 냉침하기 좀 아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확 퍼지는 향 같은 건 없고 차의 다채로운 맛을 좀 뭉툭하게 깎는 느낌이 있어서일지도? 아니면 머그컵에 담아 훌렁훌렁 마시는 나의 자세와 관련이 있을까?

올해는 너무 덥고 습해서 도무지 뜨거운 차는 못마시겠는지라 그러거나 말거나 아시아 최상위권 차 말고는 다 풍덩풍덩 담가보고 있지만(…) 그것은 비싼 중국차를 산 지 3년만의 일이었다….

정산당에서는 나름 중국차 냉침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기존에 내가 풍덩풍덩 담가먹던 시간보다는 좀 짧은 편이다. 녹차는 2시간, 백차와 우롱차는 4시간,  자스민류는 3시간, 홍차는 7시간이라네.

https://lapsangstore.com/pages/how-to-make-cold-brew-tea

음.. 이걸 따라해볼까 하다가 또 24시간 차를 담구는 나란 인간이란. 일단 중국차중에서는 한국 녹차와 비슷한 맛의 튼실한 태평후괴와, 아무튼 우롱차인 봉황단총이 맛있었고, 의외로 홍차도 나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국산 녹차를 우리기 좀 어려워하는 편인데, 어차피 세작이나 우전은 아무리 고급이어도 복잡한 뉘앙스로 승부하는 편이 아니라 내 똥손 온침보다는 냉침이 맛이 낫긴 했었다.

냉침한 태평후괴. 유일하게 다시백 따위에는 들어가지 않으시는 분..

냉침한 차를 머그에 따라 아 시워언하다~ 하며 후루룩후루룩 마시다보면 아 차 별 거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들고 개인적으로는 맥주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차 특유의 떫은 맛이 싫다면, 게으름뱅이라면, 더운 날 차 우리는 게 번거롭다면 냉침차로 비싼 차를 낙엽으로 만드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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