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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pr 11. 2022

(유사) 얼그레이 하이볼을 만들어보았다

의외로 얼그레이보다 훈연향이 핵심일지도?

최근 현미녹차 이후로 최고의 차 관련 히트 아이템이 터진 분위기인데, 그것은 바로 TV예능 “나 혼자 산다” 에 나온 얼그레이 하이볼이다.

박나래 님이 대식좌와 소식좌 모두을 집으로 초대하여 배불리 먹이는 에피소드의 웰컴주로 등장한다.

이제 보이생차도 간당간당한 위장이 되었건만 역시 인간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 방송을 보니 가쿠빈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사용하는 일반 하이볼 레시피에 시판 얼그레이 홍차 시럽(포모나 믹솔로지 스모키 얼그레이 시럽)을 넣는 거라 굉장히 만만해 보였다.

비율은 공개되지 않지만 방송에서 이 세 가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하다.

친숙하지만 골치아픈 재료, 시럽

먼 옛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밀크티 메뉴를 만들 때, 시판 홍차 시럽을 사용했었다. 300ml정도 크기의 머그컵에 한 1cm 좀 안되는 두께로 시럽을 깔고, 스팀기로 데운 우유를 붓고, 부산물인 우유거품을 떠서 얹은 다음, 시럽 펌프로 그림 비슷한 걸 그려 내곤 했었다. 이게 차맛도 아니고 엄청 달기만 해서 무슨 맛인가 했지만 무엇보다 단가가 쌌다.

이 카페는 주점 신고도 안하고 맥주나 칵테일류도 냈다 보니(…) 이런저런 칵테일 레시피도 익히게 되었다. 대부분 차게 마시는 칵테일에는 단 맛을 내면서 특징적 향과 맛을 첨가하기 위해 시럽을 사용하게 되지만, 시럽들은 대체로 1리터 단위로 팔면서 개봉 뒤에는 오래 보관되지 않는 편이었다. 그 이후 집에서 칵테일을 제법 만들었지만, 음용 기한이 지나서 버린 시럽만 몇 통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시판 시럽은 사정이 낫다. 그 당시에 아이스 커피류를 위한 설탕 시럽은 거의 매일 직접 만들었는데, 직접 만든 건 며칠 안되어 맛이 변하거나 굳어서 쓸 만큼만 만들었던 것 같다.

가격이 싸든 비싸든 1리터짜리 시럽처럼 필연적으로 버리게 되는 걸 사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럽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물과 설탕을 1:1로 끓여 만드는 거라 음료 한두잔 분량은 잘 안 나온다.(소량으로 만들다가 태우기 십상이다) 시럽은 없지만 차라면 먹고 죽을 만큼 있으므로 최소 분량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시럽을 만들려니 얼그레이가 없네?

요즘 너무 중국차 대만차 디카페인차 위주로 먹다보니 그 많은 차 중에 얼그레이가 없었다. 정확히 대치되는 제품이 없었으므로 비슷한 두 가지 차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1. 위타드 잉글리쉬 로즈 (티백) - 얼그레이 블렌딩은 베르가못이 핵심이지만 꽃향도 들어가니 비슷하다고 마음 속으로 우겨 보았다. (장미향은 안 들어간다.)

2. 정산당 정산소종 홍차 파우더 - 스모키 얼그레이 시럽이면 스모키(훈연향)이 얼을 이기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다. 베르가못 가향 자체가 중국 홍차의 훈연향을 흉내내어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니… 너무 자기주장이 강한 향과 다른 향을 조합하면 덜 센 향이 아예 죽고 끝에만 흔적처럼 은은하게 남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얼그레이 라벤더면 얼 특유의 베르가못향이 라벤더를 이기는 식이다. 훈연과 얼이 붙으면 훈연이 얼을 잡아먹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이 차에 대해서는 이 글에 자세히 언급한 바가 있다.



두 가지 타입의 홍차시럽 만들기

시럽을 사지 않기로 했으니 오리지널 레시피와는 좀 멀어지는 셈이다. 둘 중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직접 두 가지 타입의 홍차시럽을 만들어보았다.


일단 잉글리시 로즈 티백 5개(10g)과 물 200ml, 설탕 35g을 넣고 차를 먼저 우린 다음 설탕을 넣어 졸이는 방식으로 장미 홍차 시럽을 만들었다. 홍차 시럽은 생각보다 홍차 고유의 맛 이외엔 단맛이 두드러져서, 더 비싼 차로 만들거나 다른 가향 찻잎으로 시럽을 만들어도 크게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찬 탄산수와 얼음, 위스키와 섞으니 더욱더 장미향의 흔적이 줄어들었다.


홍차 파우더를 쓴 시럽 쪽이 만들기 더 쉽다.

파우더 2g

설탕 40g

80도 정도의 물 80-90ml

을 섞으면 약 100ml 정도의 시럽을 만들 수 있다. 이걸로 만들 수 있는 하이볼은 4-5잔 정도. 끓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절반으로 계량해 만들어도 상관없는 점이 큰 장점이다. 양쪽 다 단맛의 농도는 다른 홍차 시럽 레시피도 참조해보고 최대한 기억 속의 시판 시럽과 맞춰 보았다.(너무 옛날이라 안 맞을 수 있긴 하다)


수제 시럽으로 (유사)얼그레이 하이볼 만들기

하이볼은 기본적으로 위스키 1:탄산수 휘뚜루마뚜루… 섞는 휘뚜루마뚜루 음료이다. 독하게는 1:2로 마시는 사람부터 1:4 이상으로 마시는 사람까지 엄청 다양하다. 나는 1:3.5를 선호한다.


얼음을 꽉채운 400ml 컵에

위스키 45ml (1)

홍차시럽 22.5ml (0.5)

토닉워터 157.5ml (3.5)

를 넣고 잘 저어 주면 유사 얼그레이 하이볼이 완성된다. 나는 칵테일용 지거를 사용해 계량했지만 비율만 맞으면 위스키잔이든 소주잔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또 원래 하이볼이 그렇듯 레몬이나 레몬즙은 옵션이다. 방송에 나온 오리지널도 레몬은 가니쉬로만 활용하는 것 같다.


쓸데가 생긴 훈연향?!

하이볼이 휘뚜루마뚜루 음료이긴 하지만, 비율과 재료를 테스트해가며 두 가지 종류로 다섯 잔을 마셔 보니 생각보다 제품을 탈 것 같다. 방송에서는 산토리 가쿠빈을 사용했는데, 이 위스키는 단독으로 마시면 위스키인가? 싶을 정도로 향과 알콜맛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또 토닉워터의 쓰임도 절묘한데, 마일드한 위스키향을 베이스로 토닉워터 특유의 향과 훈연향의 진한 홍차맛이 조화를 이룬 다음 단맛 자체가 킥이 되는 느낌이었다.

비주얼로는 차이 안나지만 잉글리시 로즈 티백으로 만든 홍차시럽과 일반 탄산수로 만든 테스트 하이볼.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탄산 입자가 거칠고 단맛이 적은 일반 탄산수에도 만들어보았더니 토닉워터가 훨씬 더 나았고, 칵테일 세계로 가면 홍차 향은 여리여리한 편이라 과일향 같은 게 들어가면 그 향이 홍차 시럽의 맛과 향을 다 잡아먹어버렸다. 그래서 토닉워터가 아닌 일반 탄산수를 사용하거나, 같은 가격대라도 알콜맛과 향이 강한 짐 빔이나 잭다니엘 같은 위스키를 사용하면 절묘한 그 맛의 밸런스가 아닐 것 같긴 하다. 스모키 얼그레이 시럽에서 스모키가 앞설 것이라는 내 추측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훈연향 홍차로 만든 음료 중에 제일 절묘하게 맛있긴 했다.


하이볼은 휘뚜루마뚜루 음료니까

아니나 다를까 나 말고도 방송 이후로 온동네에서 이걸 다 따라해보고 있었다. 마르코폴로주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르코폴로는 비싸지만 홍차 시럽은 좀 만만하고 싸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솔직히 나조차 마르코폴로를 직구하거나 수입상에서 사기 귀찮았다)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시면 배앓이를 하는 편이라,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 먹나 구경해 보았다. 가쿠빈 위스키, 토닉워터, 스모키 얼그레이 홍차시럽이라는 기본 재료부터 양까지 마음껏 변형해서 모두들 맛있게 마시고 있었다.(훈연홍차로 직접 시럽을 만든 내가 제일 멀리 왔을 지도?) 하긴 술은 먹고 취하면 다 맛있으니 OK인 것 같다.


+) 요즘 중국의 코로나 관련 봉쇄로 중국 해외직구 제품들 배송에 전부 문제가 생기고 지만, 파우더 홍차는 다행히 국내 출고인  같다. 봉쇄로 배송이 잘 안되다보니 아예 잘 팔리는 제품은 한국 창고에서 출고하게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http://mitem.gmarket.co.kr/Item/FaceBook?GoodsCode=2151155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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