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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ug 02. 2022

감히 사계절국의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려 하다니

우당탕탕 초보식집사가 된 이유

잠시라도 한국의 교육과정을 거친 어린이였다면, 방학숙제 같은 것이라도 은근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식물 기르기지만 나는 크게 재미를  적이 없다. 비료를 주지 않은 작은 화분에 키운 토마토진딧물 밥이  뻔한  구해주었더니 겨우 새끼손톱 정도 크기의 토마토가 열릴 때부터였을까,  컵에 천원 이천원하는 선인장을 샀다가 물 주는 것.. 아니 존재를 잊어 죄다 말려죽이고 나서였을까. 태생적으로 과몰입 인간인 나에게는 루틴하게 뭔가를 돌보고 관리한다는 개념이 없었다.(어렸을 때는 신문이나 책을 읽다 보면 주변에서 나는 소리도   듣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누군가가 화분이나 식물을 권하면 마이너스의 손이라 키우는 족족  죽인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죽인 화분이 분명  개는 넘을 것이다.


웨이브의 크고 작음만 있을 뿐 종식되지 않는 전염병과 썩 좋지 않았던 건강상태 때문에 무기력한 날이 지속되었다. 출퇴근을 염두에 두고 이사한 집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 겨울에는 늘 어두컴컴했고, 어둠 사이로 무기력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왔다. 대책을 만들어 당장 실행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불안은 늘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떨쳐지지 않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이 처음 시작되던 때, 줄 서서 마스크를 구매하다가 꽃집에서 별 생각없이 사왔던 히아신스가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3년째에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3년째에도 새순이 나오고 꽃이 나온 히아신스 화분.
두번째 해의 히아신스와 처음 샀던 히아신스. 꽃이 지고 잎도 진 후 기다리면 다음 해에도 꽃이 핀다. 비록 꽃 수가 줄어들긴 하지만…
혹시…이젠 집에 식물을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많고 겁도 많은 성격이라 늘 뭔가를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주변에 플랜테리어 유행이 돌고 식집사가 하나둘씩 늘어가도 식물이 죽을까봐, 관리가 안 될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식물 키울까? 라고 주변에 물어보니 의외로 다들 적극적으로 권해 주었다. 화분을 죽였던 건 어려서 에너지를 쓸 데가 많아서 그랬고, 나이가 들면 식물 무게를 재며 물을 주게 된다나. 식물에 관한 책이나 남이 키운 식물 보는 건 좋아하는 나로서는 약간 솔깃해졌다.


식집사 입문은 춘삼월이 최고

마침 올해 3월이 딱 시작할 때였고, 여행에서 돌아오던 나는 아산 세계꽃식물원이라는 식물원과 화원의 중간지점 느낌의 장소에서 세 개의 작은 화분을 들이게 되었다. 엄청나게 큰 온실에 식물을 전시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곳이었다. 입장료 8천원을 내면 식물 판매점에서 8천원어치의 식물을 살 수 있는 쿠폰을 준다.

식물을 전시하는 곳과 파는 곳.

[카카오맵] 세계꽃식물원

충남 아산시 도고면 아산만로 37-37 (도고면 봉농리) http://kko.to/90zGqPpby

내 인생 처음으로… 한꺼번에 화분 세 개를 샀다.

키우기 쉽다는 식물만 영겁의 고민 끝에 골라 구매한 뒤, 작업방에 쪼르륵 놓아보았다. 사실 이 방은 빛이 잘 든다고 하기는 좀 어렵다. 바람이 잘 통한다고 하기도… 인간이 보기 좋은 곳 몇 군데에 배치해보니 하나같이 좀 어둑하고 구석진 곳이라 식물이 괴로울 것 같았다. 그나마 베란다가 살기 좋으려나.. 하며 온습도계를 둬보니 3월 초인데도 영상 3도 정도였다. 낮에는 그정도까지는 아니라서, 낮에는 바깥에 내놓고 밤에는 거실로 들이는 생활을 몇일간 했다. 다행히 몇일 지나니 밤에도 얼어죽지는 않겠다 싶은 온도가 되어서 늘 베란다에 식물들을 내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큰 식물이 갖고싶어

조그만 화분들 몇 개를 베란다에 내다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뭔가 레이아웃상으로 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봄이니 양재 꽃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평소에 식물원 방문을 좋아하지만 막상 주변 가게나 화원에 가끔 가보면 집에서 키울 수 있는 품종은 늘 그게 그거였던 것 같은데, 종류가 엄청 많았다. 식물도 사무실 개업식에 오는 대품 화분쯤 되면 제법 비싸지므로 초보자도 키우기 쉬운 화분 품종들 위주로 물색했다. 큰 화분을 사니 배송비 15,000원(아마 크기에 따라 다를 듯…)을 내면 당일 오후에 집에 가져다주었다. 고무나무는 똥손이라도 키울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나머지 그 날 집에 데려온 건 모두 고무나무였다.

벵갈이 입주 당시의 조신한 모습….

확실히 큰 식물을 입주시키고 나니 확실히 베란다 조경(?)레이아웃에 안정감이 생겼다. 왜 이럴 때만 쓸데없이 디자이너 자아가 튀어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첫 석 달은 대체로 편했다. 2022년에는 물 주는 주기를 맞춰주는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흙에 꽂기만 하면 말라있는지 젖어있는지 알려주고 여기저기 찔러본 뒤 대체로 빨간색 영역 눈금이 뜰 때 물을 주면 문제가 없다.


눈금 물주시개 https://naver.me/50pu8our​ ​


아예 개별 화분에 고정으로 꽂아놓고 관리할 수 있는 서스티라는 제품도 있었다. 이건 그냥 파란 펜이 허옇게 되면 물을 주면 된다. 단 모든 화분에 쓰기엔 가격이 좀 비싸긴 해서 예민한 식물들 몇 가지에 꽂아넣고 쓰게 된다.


서스티 https://naver.me/GoBnL2BG


장비로 물 때 문제가 해결되니, 물만 줘도 그냥 지가 알아서 막 새순이 자라고 꽃도 피고 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것이 봄에 입문한 식집사의 특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장마철이 시작되고 나서였다…….


문제는 똥손이 아니라 환경이었다

식물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물 줄 때와 화분갈이할 때를 판별하기 어려운 나의 똥손이라고 생각했었다.(우리집에서 가장 오래 버틴 크루시아는 두번째 분갈이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하지만 하다 보니 한국 공동주택의 실내에서 초록 식물들을 키운다는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집 안에서 밀봉하지 않은 차가 쉽게 눅눅해지거나 향이 변하거나 상하는 원리와 같았다.


세계 최고의 연교차(-18~+37)와 습도(20~90)차를 견딜 수 있는 식물은 실내 환경의 광량 및 통풍 부족을 견딜 수 없다.

는 게 한국의 홈가드닝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정의한다. 한국의 자생식물도 예쁜 것들이 많은데, 요즘 반려식물들로 인기 있는 품종들은 왜 모두 머나먼 더운 나라에서 왔을까? 이국적인 식물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겠지만, 추위와 더위를 모두 견딜 수 있는 식물들은 빛 부족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아무리 볕이 잘 드는 베란다라도 실내라면 유리창과 방충망을 통해 들어온 빛이라 사실상 반쯤 그늘이나 다름없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곤충도 많이 꼬이게 된다. 나 포함 실내에서의 곤충과 동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곤충이 그나마 덜 꼬이고 다소 어두운 실내에서라도 잘 자라는 열대기후 출신 관엽식물들이 식물 초보자에게 주로 추천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이다. 그래도 실내라면 더위와 추위는 에어컨과 난방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열대우림에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도 많으니, 최상단을 차지하던 품종이 아니라면 광량 부족은 식물등으로 어떻게 해볼 수는 있다. 좁은 공간이라면 습도도 어찌저찌 힘들게라도 컨트롤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위적으로 온도, 습도, 빛 등의 요소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에 실내의 식물들은 늘 문제가 생기고 연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과 사람이 쾌적한 환경은 다르다보니, 온실화원 전용공간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인간의 쾌적함 쪽에 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갇힌 사람들이 집에서/실내에서 초록이를 보겠다고, 나 이외의 생명에서 대자연을 보는 듯 기운을 얻어보겠다고 하는 것이 식집사 노릇이요 플랜테리어였던 것이다. 식물이 생긴 뒤로 창밖을 바라보면 덜 답답한 느낌이 들고, 좀 멍때릴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다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의 공동주택 실내에서 감히 식물님을 기르겠다고? 적 환경에, 입문하는 사람은 우당탕탕 헤매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 식물을 죽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그냥 하면 잘 되지 않는 쪽이 “당연하다”. 그래서 첫 해의 우당탕탕 망한 초보자적 에피소드들 위주로 조금씩 적어보려 한다. 그동안 컴퓨터만 줄창 다뤄왔다 보니, 컴퓨터나 모바일 인터페이스나 시스템 말고는 놀랄 정도로 기본적 부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정보망에서 초보자가 텍스트로 된 기본적 정보를 찾기가 어려운 건 이 바닥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예쁜 꽃을 피워주다 장마철에 과습으로 죽어버린 솔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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