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지기와 능이채취)
ep-10. 다시 서울로(펜션 지기와 능이채취)
첫째는 알레르기가 있다. 저녁이 되면 눈도 수시로 붓고, 콧물도 자주 흘렸다.
서울의 공기가 그러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주말에 가까운 산이나 야외로
나오는 게 최선이었다.
산골에 어찌 적응을 할까?라는 고민도 잠시 어찌어찌 한 달간 산골 펜션에서 지내다 추석을 맞아 서울로 향했다.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본 집은 참 환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아파트인데
그 환한 조명까지 더해지니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파트의 led와 펜션 전등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 커 보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만큼 빛 공해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 가있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와야겠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생각보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노원역 문화의 거리 일대를 거닐고 백화점을 한 바퀴 도는 게 도시를 누리는 전부였다. 밤에는 집에서 다 같이 멀뚱 거리며 스마트 폰으로 시간을 때웠다. 지금 까지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회사 생활과 육아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 같은 모습이었기에 그런 생활이 평범한 삶이라는 편견과 남들처럼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추석연휴까지 늦더위에 탁한 공기는 산골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울에서 이틀을 보내고 부랴부랴 펜션을 향했다. 긴 연휴 끝자락이라 다행히 차는 밀리지 않았다. 펜션을 올라가는 입구가 보이자 의지와 무관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도시인이 맞나?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한 달의 산골 생활에 우리는 이미 적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의 적응력은 가히 빛의 속도였다.
펜션에 도착하니 사장님과 사장님 언니분께서 산행을 마치고 오신 터였다. 왜 이렇게 일찍 올라왔냐고 물으시며 같이 점심을 하자고 하셨다. 힘들게 채취해 온 능이버섯을 라면에 넣고 끓어주셔 허겁지겁 참 맛있게도 먹었다. 맑은 공기와 푸른 산, 그리고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이는 이곳이 아파트보다 훨씬 더 우리 집 같았다.
능이를 캐다!
명절 전에 펜션지기와 언니분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 버섯채취를 하러 뒷산을 올랐다. 같이 가겠다고 며칠 전부터 부탁을 드렸던 터라 부담스러운 새벽 기상을 견뎌야 했다. 다만, 가벼운 등산을 생각했는데 처음 겪어보는 힘겨운 산행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길 따위는 없었다. 능선으로 오르기가 편하지만 버섯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비탈길로 산행을 한다. 비탈길은 당연히 나무가 빽빽하게 드러 차 있다. 나무와 나뭇가지 그리고 풀숲을 헤쳐가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가파른 비탈길 덕에 발목은 45도로 꺾인 상태가 기본값이었고, 금세 숨은 차올랐으며, 풀과 나뭇가지가 수시로 온몸을 찔러댔다.
길이 없으니 나무를 헤치며 앞으로 가는 길. 말 그대로 내가 가는 곳이 길이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내 길이다. 내가 가는 곳이 곧 내 길이다’ 이 말을 무의식적으로 주문처럼 중얼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도 같아서 그랬는지 모른다.
참 힘들게 산을 오르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인생을 참 편히 살려했구나 라는 반성을 기본으로 숨이 붙어있는 한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자녀들을 자유롭게 넓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까지 여러 생각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채웠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살아있다는 게 절절히 느껴졌다.
버섯을 발견하지 못할 거라 우려와는 달리 다행히 능이도 싸리도 채취할 수 있었다. 버섯을 발견했을 때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산삼을 발견하는 사람이 “심봤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마음을 이해했다. 능이와 싸리를 알아보는 안목도 얻었다. 살아있는 지식들을 배우는 재미도 좋다.
팬션지기와 산행 3 (능이를 발견하다!!.) (youtube.com)
하산하는 길에 후들거리는 다리는 계곡에 찬물로 진정시켰다. 거친 산행을 통해서 성찰도 하고 자연도 배웠다. 오늘도 충만한 하루였다.
다음에도 기회가 허락 될 때마다 펜션지기와 동행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