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토끼 Jun 25. 2021

제4화 비 오는 날에 네가 먼저 생각나

비가 내리는 날, 희망이와 나의 이야기

비가 오는 날에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내가 20대 초반쯤의 일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져 생각보다 늦게까지 있었다. 그러던 중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려고 하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비는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카페 문 앞에 서서 어떻게 할지 고민했었다.


“너무 많이 내린다. 이건 우산도 필요 없겠는데? 택시 탈까?”


카페에서 친구 집과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30분이었고, 대중교통은 이미 끝나고 없었다. 우리에게 방법은 택시뿐이었다. 하지만 내 질문과 달리 친구는 전혀 다른 반응을 했다.


“우리 비 맞으면서 뛰어가면서 갈래? 이것도 다 추억이잖아!”


나도 그때 무슨 패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우리가 최대한 덜 젖기 위해 뛰었던 건지,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뛰었던 건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었다. 그날의 일이 나에겐 그 친구 말처럼 추억으로 자리 잡아, 비가 오는 날엔 가끔 그때의 우리가 생각난다.




처음 우비를 산 날


그때의 추억이 무뎌지고, 새로운 추억이 생긴 것은 희망이가 오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희망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희망이를 만나러 가는 길목마다 있던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질퍽한 땅, 젖은 바지까지 전부 다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희망이도 비 때문인지 갈색 털이 유난히 더 두드러져 보였고, 비가 내리는데도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웃으며 뛰놀고 있었다. 마치 20대 초반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다른 데로 가고 싶은 희망


희망이를 데리고 오고 나서, 희망이는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배변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희망이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 솔직히 나는 비가 오는 날엔 대소변만 보고 바로 들어오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처럼 희망이는 바로 대소변을 하지 않았고, 최소 크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희망이는 풀이 많은 인근 산으로 가고 싶다며, 안 가겠다고 드러눕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리를 질러댔다.


“아… 안돼!! 눕지마!! 앉지마!! 하지마!!”


대개 3번의 ‘안돼!’를 부르지만, 이미 늦은 상태이다. 그렇게 젖은 몸으로 날 쳐다보는 데, 얄미울 때도 있었다. 결국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비 올 때마다 희망이와 힘겨루기 하던 날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비오고 난 뒤 잘 못 들어간 산책로에서 일어난 비극


비 오는 날을 미리 확인해서, 그날은 목욕하는 날로 정했다. 주로 일요일마다 목욕했지만, 비가 온다면 데리고 나가 맘껏 뛰놀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옆엔 작은 산이 있다. 그 산 테두리 중 한 곳엔 넓은 풀밭이 있는데, 비가 오는 날 나가면 항상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희망이를 잠깐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풀어주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비가 오는 날 시도해 보았다. 희망이에게 노란 우비를 입히고, 나 역시도 파란 우비를 입고 굳건한 마음으로 풀밭으로 향했다.


비오는 날 대변 성공한 희망이


나의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희망이는 매우 만족해했다. 풀 위에서 어찌나 깡충깡충 뛰는지 마치 토끼처럼 날렵하고 높게 뛰었다. 또 바닥에 있는 물웅덩이에 몸을 비비기도 하고, 풀에 맺혀 있는 물을 먹기도 하며, 내게 달려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 모습이 처음 만난 날의 희망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희망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기분이 좋아 같이 뛰어놀면서 장난도 치며 우리의 유대감을 만들어 갔다. 이 유대감의 끝은 흙으로 뒤덮인 우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비 오는 날 풀밭에 나간 후 돌아온 나와 희망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날엔 안전을 위해 그렇게 놀진 못하지만, 시간과 장소, 날씨가 도와주는 날엔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제 여름의 비는 우리에게 ‘나가서 놀자!’라는 알람과 같다. 내가 밖으로 나와, 일하거나 공부를 할 때도 창밖으로 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희망이가 생각난다. 어떤 특정한 것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첫 감정이 좋은 감정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추억과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행복한 기억과 추억은 먼 훗날, 혹은 가까운 미래에 나의 행복 시너지 버튼이 되어준다.  나는 이제 비가 오는 날엔, 내 기분과 상관없이 그 비를 보며 희망이를 생각할 것이다. 그 생각으로 내 얼굴엔 미소가 생길 것이고, 그 순간 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 희망이가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









작가의 이전글 제3화 양말이의 스크래치 취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