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충우돌 미국 생활
미국에서 첫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교수님이 숙제를 내주셨는데, 나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눈치가 있으니까. 주변 학생들이 열심히 노트하는 걸 보고 따라 적었고, 집에 와서 사전을 뒤져가며 숙제를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제출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내 숙제를 보고 한참을 조용히 계시더니 조용히 한마디 하셨다. "음... 이건 아니야."
나는 엉뚱한 걸 해 간 것이었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교수님은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셨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줄거리’를 A4 두 장에 걸쳐 써 간 것이었다. 친구들은 뒤에서 낄낄댔고, 교수님은 머리를 살짝 흔들며 숙제를 다시 내주셨다.
미국 뉴욕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정신이 없었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낯설었다. ‘Exit’ 표지판을 따라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어디 가냐"고 묻는 거였는데, 당황해서 그냥 종이에 적어둔 주소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뉴욕의 빌딩 숲을 보며 ‘진짜 내가 미국에 왔구나’ 하고 실감했다.
이런 좌충우돌 끝에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키우는 아이들도 한국과 미국 문화가 섞이면서 헷갈리는 순간이 많았다. 한 번은 아이가 한국식으로 어른에게 두 손으로 물건을 건네야 한다고 배웠는데, 학교에서 선생님께 두 손으로 연필을 공손하게 건넸다가 "괜찮아, 그냥 던져도 돼!"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음식 때문에 고생했던 일도 많다. 지금은 한국 음식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배추도 구하기 어려웠다.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었는데, 아삭한 식감은 좋았지만 뭔가 부족한 맛이었다. 그래도 그 김치 덕분에 그리운 한국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실수가 많았다. 손님이 주문한 ‘clam chowder(조개 수프)’를 ‘clam salad(조개 샐러드)’로 착각해서 엉뚱한 음식을 가져다줬다가 난리가 났다. 손님은 당황했고, 나는 더 당황했다. 매니저는 한숨을 쉬며 다시 주문을 넣었고, 나는 조용히 뒷주머니에서 단어장을 꺼내 단어를 다시 외웠다.
그리고 첫아이를 낳았을 때. 병원에서 간호사가 진지한 얼굴로 "혹시 아기 바뀔까 봐 걱정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여기 아시아 임산부가 나밖에 없는데요?"라고 했다. 아기들이 다 백인이었으니 내 아이를 못 알아볼 걱정은 없었다.
이렇게 나는 영어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실수하고, 웃고, 당황하면서 익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영어를 배울 때 너무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실수도 하고, 엉뚱한 경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