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오던 날 덕수궁에서

첫사랑

by JENNY

ㅈ 첫눈이 오던 날, 덕수궁에서


첫눈이 내리면

어느 해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 바람처럼 찾아온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장난처럼 말하는

'손전화'라는 말도 없던 시절이었다.

약속을 정하면 메모지에 적어두고,

마음으로 기억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 노력하던…

그런 시절.


우린 첫눈이 오면 덕수궁에서 만나자고 했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첫눈이 오면”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를 설레게 했다.


첫눈이 내리던 날이면

집 창밖만 쳐다보고

혹시 지금쯤 그곳에 가 있을까,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슴 뛰는 마음으로 벗들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왔고,

누군가는 못 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결과가 아니라 “의도”였으니까.

보고 싶은 마음,

친구라는 마음,

순수한 마음이 담긴 약속이었으니까.


오늘 문득, 첫눈이 내려

내 젖은 마음 한켠으로

어릴 적 친구들이 스며들었다.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나처럼 첫눈을 보며

순간 멈춰 서서,

그때의 우리를 떠올리기도 할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고,

어떤 이는 회사원이 되었을 테고,

어떤 이는 먼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처럼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세월이 흐르니

같이 찍었던 사진도 남아 있지 않고,

전화번호도 모르고,

SNS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눈은 이렇게 그들의 이름 없는 자리까지

불러내 준다.


아마 그때의 친구들도

지금의 나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참 순수했지.

웃기만 해도 좋았지.

약속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시절이었지.”


어쩌면 첫눈이 내리는 이유는

기억을 꺼내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마음을

다시 만지게 해주려고

하늘이 살짝 문을 여는 것일지도.


첫눈은 매년 사람들 세상으로 내려오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첫눈이 소중하다.


첫눈을 보면

그때의 우리를 다시 불러낼 수 있고,

그 시절의 마음을

다시 잠시나마 품어볼 수 있으니까.


첫눈은 그래서

추억이자 편지이자

내 마음의 작은 타임머신이다.


오늘, 첫눈을 보며

어린 시절의 벗들이

참 많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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