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나로 살래요

by 이영서 Angie Lee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가 ‘나를 잃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내가 살아가다 문득 숨이 막혀올 때, 그 답답함의 시작에는 언제나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게 싫다는 생각이 있었다. 일류 대학에 들지 않으면 찍히는 실패자 낙인, 남들 누구나 흔히 가는 평범한 길을 버려두고 과감하게 도전하면 따라오는 불편한 뒷말. 내가 아닌 남이 멋대로 규정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뱉은 그 한 마디로 누군가의 인생을 정의내려도 되는 것인가.


남을 쉽게 재단해도, 내가 평가받는 것은 용납이 안되는 것. 나도 평소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서 무심코 남을 평가하고는, 그 추함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내 멋대로 단정짓다니, 죄책감이 들고 무력해지기까지 한다. 악습(惡習). 이 거대한 사회가 낳은 편협한 그 생각들은 이제 우리 개개인 속에 습관처럼 스며 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 무의식에 자리 잡은 채 이리 곪아가고 있던 걸까. 뭐,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몇십 년을 지내오니 그렇게 만들어진 단단한 세계를 깨부수기 쉽지 않을 수밖에.


반년이라는 세월을 우리나라가 아닌 타지에서 지내 보니 깨달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들은 나의 세계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새로움이 주는 충격은 굉장했다. 매일 반복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다양한 나라와 도시 속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거든.


누군가는 뼈빠지게 일하고 있을 오후 3시, 저 멀리 스페인에서는 뜨거운 해를 피해 여유롭게 시에스타(Siesta) 시간을 보내고 있다거나. 겸손함과 정중함이 덕목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히려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해야 존중받는 네덜란드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이건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 이처럼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나에게 너무나 당연했던 라이프스타일이라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조차 못 했던 부분에서 ‘어?’ 싶은 순간들이 계속 온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던 것들이 오히려 어딘가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말이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이렇게나 다르다.


굳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지 않아도, 당장 주변만 둘러보더라도 충분하다. 9시 수업을 들으러 아침에 일어나는 대학생이 있다면, 야간 근무를 마친 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잠에 드는 알바생도 있을 테니까.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 다를 수밖에 없다.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 인생이다. 다 똑같이 정해진 삶을 산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어. 변수라고는 없어 두려워할 실패도, 기대해 볼 설렘도 없는 삶은 오히려 재미없고 지루하잖아.


조금만 눈을 돌려도 삶은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대체 ‘옳은 삶’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디에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기준을 남이 아닌 나에게 온전히 둘 수 있어야 함을 느끼는 나날들이다.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삶을 내가 나라서 개척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더 많은 이들이 나답게 산다는 것의 기쁨을 알고 나다워졌음 하는 바람으로. 행복, 별거 아니라는 뻔한 이야기를 ‘그래 진짜 그렇더라’ 하고 끄덕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OO학과 가면 미래가 없대. 취업도 어려워.“

“이 나이에 무슨 도전이야. 이미 늦었어.”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 무난하게 편하게 살아.”

“이건 이제 유행 지났지. 너무 촌스럽지 않겠어?”


비교는 끝이 없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뭐 하나 정해진 것이 없어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나도 타인과 비교하며 불안하고 두려울 때가 많았다. 남들만큼 꼭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 뒤처지지 않고자 발버둥쳤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비교라는 것은 상대에 따라 계속 바뀌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교의 본질이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남들에 맞추어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은 명백하게 나인데 말이지. 오해 말아야 하는 부분은, 내 잣대를 타인에게 함부로 들이밀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내 입맛에 상대를 끼워 맞춘다면 그 얼마나 안일한 행위인가. 존중받고자 한다면 나 먼저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나’가 다른 ‘나’를 무너뜨리도록 내버려두지는 말자.


심지(心志)가 곧은 사람이 그 중심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되새겨야 할 한 가지는 ‘나다움’인 것 같다. 남들이 나를 정의내리도록 내어 주지 않고, 나의 신념과 기준 아래에 살아가는 것. 나를 잃지 않을 때, 나의 삶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에 있어 행복은 별게 아닐 텐데, 우리는 이 사회의 검은 유혹에 속아 나를 잃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삶일 테니까. 입고 싶은 대로 입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쉬고 싶은 대로 쉬자. 스스로에게 떳떳한 한 자유를 만끽하라. 그래도 된다. 그래야 사는 맛이 나지 않겠나.


물론 나답게 산다고 해서 갑작스레 삶이 쉽고 순탄해지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삶이, 남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기보다 단단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나는 나다울 때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에 의한 그리고 나를 위한 삶을 택할 거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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