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곱씹을 때 더 아름답다

by 이영서 Angie Lee

내 나이 벌써 스물넷이다. 흔히들 한창 좋을 때라 말하는 이십대의 중반에 놓여 있다. 아직 너무 젊은 나이지만 정말이지 나 또한 요즘 세월이 야속함을 체감한다. 월요일 아침, 일어나기 싫어 알람을 몇 번이고 다시 맞췄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한 주가 금새 지나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란다. 이제 다음 월요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시간 개념을 잃는 것만 같은 나날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해가 바뀌어 있다. 이상하다. 원래 시간이 이렇게 빨랐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 신기하게 정말 그렇더라. 잠깐 걷는 게 힘들고 싫어 어떻게든 유아차를 타고 싶어했던 내가 날씨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만 보를 걷질 않나. 어릴 적 엄마가 매일같이 데려가 주셔도 지루해 극장에서 울고 불었던 뮤지컬을 보겠다고 직접 극장을 찾지를 않나.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것이 이제 비로소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다.


많이들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이 좋아진다고 한다. 어쩌면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점점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년 반복되는 사계절이지만, 매번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순간의 기쁨인 거다. 찰나의 순간을 무심코 흘려 보내지 않고 굳이 애정하려는 사람들은 안다. 봄에는 걷다가도 형형색색 예쁘게 피는 꽃 앞에 잠시 멈춰 셔터를 누르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초록빛을 즐길 줄 안다든가. 노랗게 붉게 물든 단풍잎 속에 뛰어들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온전히 느낄 줄 알며, 눈 오는 날 입김 후후 불며 거센 추위에 떨더라도 봄에 대한 기대감으로 겨울을 보내기도 하는. 순간의 매력을 아는 그런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삶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다정한 이들 말이다.


이렇게 시선이 따스한 이들은 삶이 조금 더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남들은 쉽게 지나칠 법한 장면을 한 번 더 들여다 볼 줄 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즐거워서 삶의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거다. 여유가 있는 삶은 단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마음 한 켠에 언제나 작은 방 하나쯤 열어둘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아무리 지금 사회가 각박하다지만 그 무력함에 굴복해 어둡게만 살아갈 것인지, 그래도 그 속에 숨어있는 반짝임을 조금씩 찾아나갈 것인지 선택하는 건 개인의 몫이다. 그래서 난 굳이 따스함을 좇아 작은 아름다움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런 삶을 택했다.


나이든다는 것이 달갑게 느껴지는 경우는 많이 없을 테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나이 중심 사회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걱정되지가 않는다. 오히려 나이들어가는 내 모습이 기대된다. 조금 더 자란 나는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 누구와 함께하고 있을지 그리고 아직 이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눈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곱게 나이든다는 건 사람마다 너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왕 사는 거 조금 더 즐겁게 감탄하며 쌓아가는 삶 그걸로 충분하다. 영원하지 않아 더 소중한 내 모든 것을 차근차근 곱씹으며 그리 나아가고 싶다.


삶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가 흘려 보내는 시간들은 모래와도 같아서, 아무리 잡아 보려 애써도 손 틈새로 계속 조금씩 빠져나간다. 주어진 시간이 똑같다면, 굳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어둠에서 허덕이기보다 굳이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발견하며 그렇게 예쁘게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이 별거 없는 일상에서 별걸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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