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경적도 울릴 줄 알아야 한다

by 이영서 Angie Lee

봄이 가까워졌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다. 네덜란드에서 나는 매일같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어디로든 데려다주는 자전거를 타는 건 이제 습관이 되어버렸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자전거를 찾는다. 하지만 네덜란드와는 달리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지 않은 한국이라 더 조심히, 매너 있게 이용해야 한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길을 내어 달라거나 조심하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클락션을 좀처럼 울리기가 힘들었다. 괜스레 조심스러웠다. 나에게 경적소리는 꽤나 날카롭게 들렸고, 그런 의도가 아니란 걸 알지만 왠지 혼나는 기분마저 들곤 해서일까. 이 클락션을 울리면 걸어가는 저 사람도 나처럼 느낄까 두려웠다. 누구나 나처럼 예민하게 받아들일까 노심초사하며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별것도 아닌 거에 망설이는 겁쟁이 같았다.


나는 거절이 어렵다. 남에게 싫은 말 하는 게 제일 두려운 일이다. 덕분에 겉으로는 남들과 쉽사리 부딪히지 않고, 늘 원만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제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속은 곪아만 갔다. 그러다 줄곧 혼자 쌓아둔 감정들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와르르 무너졌다. 미리 경적을 울리지 않은 탓에, 결국엔 돌이키지 못할 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거다. 사소하게 거절하지 않은 나날들이 쌓이고 쌓여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이처럼 거절은 경적을 울리는 것과도 같아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려나 걱정될 순 있어도 생각해 보면 명백하게 그를 위한 거다. 따르릉 소리에 잠깐 화들짝 놀랄 수야 있겠지만, 저 사람은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이 길을 지나가고 싶지 않겠는가? 더 큰 사고를 방지하고 대비하는 경적의 힘이 결국엔 더 중요할 텐데. 나를 지키고 상대방을 지키는, 그야말로 서로의 안전을 위한 것임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나는 여태껏 모두를 위한, 잠깐이면 되는 그 클락션을 울릴 줄도 몰랐다. 그저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툭 누르면 됐는데, 뭐가 그리 어렵다고 고달프게만 생각했다. 누군가를 배려한답시고 정작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길게 바라보지를 못했다. 바보처럼 말이다.


여리고 섬세한 이들일수록 나의 감정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투영하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쌓아만 두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속상할까 싶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들. 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평생을 ‘좋아 보이는’ 말만 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쌩쌩 잘 달리다가도 간혹 경적을 울려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귀를 찌르는 클락션 소리도 필요하다. 그게 인생이다.


그래서 절대 잊지 말고, 몇 번씩 되뇌자고 말해 주고 싶다. 때론 잠시 불편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게 나와 타인을 진정 생각하는 일이니까 걱정 말라고 말이다. 우리 가끔 경적도 울려가며 살자. 상처 주지 않으려다 더 크게 다치지 말자. 작은 용기는 결국 그 길 위의 너와 나를 지키는 힘으로 똘똘 뭉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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