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오늘은 이 말이 여실히 와닿은 하루였다. 기억은 바래고 희미해진다. 기억은 우리가 나아갈 힘을 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망각 또한 마찬가지다. 잊히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또 살아가게끔 한다. 지워진 줄로만 알았으나 새롭고, 낯선 잠재력을 꼭 껴안은 채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지난 3월, 석촌호수를 거닐 때 어땠는지 전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다. 봄내음이 설렜고, 누군가와 함께라 더 좋았다는 것들 말고는 시간이 훌훌 데려가서 떠올리기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이 봄을 기다린다.
망각한 것들이 기어코 기억을 채워내곤 한다. 조각을 잊어버린 덕에, 새로움을 받아들일 익숙한 여백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만한 축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또 어떤 반짝임이 있을지, 이번에는 무슨 선물을 주고 갈지 기대한다. 조금의 망각은 남은 기억들을 예쁘게 포장해 준다.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더 아름다운 나날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