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맹인
촉수처럼 길게 내려진 눈
바닥을 톡톡 두드린다
돌아오는 소릴 듣도록
잠시 기다려주는 귀
그렇게 조금씩 열리는 길 따라
흰 눈동자 깜빡이며 나아간다
그에게 흰 눈동자란 퇴화된
꼬리뼈만큼 아무 의미 없겠지만
그래도 눈꺼풀이 먼 기억을 더듬어
그 흰 눈동자를 위하여 깜빡이고 있다
온 촉각을 긴 눈에 집중하느라
통나무처럼 굳어진 몸
조금씩 앞으로 내미는 발
몸통이 그 뒤를 따른다
그에게 세상은
빛 한점 새지 않는 암흑천지
보이지 않는 눈을 위하여
온몸이 눈이 되어
암흑 속을 헤쳐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