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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Feb 20. 2023

작은 일상도 기쁨

세 살 때 이야기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오피스텔 리모델링이 한창인 공사장이 있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레미콘차 세대가 큰 길가에서 공사장에 들아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며  깜빡깜빡 임시정차 중이었다.

공사장에는 레미콘트럭 한 대가 통을 빙글빙글 돌리며 시멘트를 쏟고 있었다.


하원 후 두 사람의 행보가 고민 없이 정해졌다.

오늘은 중장비차 찾겠다며 큰길을 마냥 걷는 일을 안 해도 된다.


어린이집 도착하니 어린이집 마당 바로 아래서 길을 다지는 작은 공사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어린이집 옆에 있는 병원 외관 페인트칠 작업을 하는 스카이차를 구경하느라 해가 질쯤에야 집에 돌아갔다.


겨울인데도 여기저기 공사가 많다. 눈앞에 작은 포클레인이 공사 중이니 미리 봐둔 공사장 가자고 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되니 잘됐다 싶었다.  거리가 꽤 되니 걷기도 힘들뿐더러 도착한다 하더라도 다섯 시면 공사 중단 시간이라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


선생님 손을 잡고 나오는 미남이에게 포클레인 있다고 기쁜 소식을 알렸더니 벌써 알고 있다고 했다.

온종일 콩밭에 마음이 가있었을 터였다.


신발을 신기기 바쁘게 쪼르르 마당 끝으로 달린다.

먼저 나온 아이가 난간을 붙들고 구경 중이었고

흥분한 미남이도 친구  옆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뒤따라 나온 아이들도 한 명 한 명 난간으로 섰다.


공사 끝나기 전에 집에 가는 건 포기하고 나보다 더 훌륭한 육아 선생님이 두어 시간 잘 놀아줄 테니 고만고만한 아이들 뒷모습이 사랑스러워 사진을 몇 컷 찍고 구석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고 혼자 남은 마당.

다리 아플 미남이를 장난감 자동차에 앉혔다.


작은 반찬통에 씻어 담아간 방울토마토를 오물거리다가 씹는 것도 잊고 멍하니 무아지경이 되곤 한다.


흙을 꾹꾹 눌러 다지고 자갈을 까는 걸로 그날 공사를 마무리하자 포클레인에 뜨거운 안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함머니 내일 또 오라고 해요"


희망고문을 하기 싫어 공사가 끝났으니 이젠 오지 않을 거라고 내일은 할머니가 중장비차 많은 다른 공사장을 찾았으니 걱정 말라며 손을 꼭 쥐었다.


내내 추위에 떨었던 아이라 서둘러 목욕을 시켰다.

목욕 중에도 미남이는 말이 많다.


늘 하던 동물놀이를 하자고 했다.

우는 건 미남이가 하겠다며 할머니는 동물이름을 말하란다.


항상 같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오리는?"

"깩깩"

"염소는?"

"엄매애 엄매애"

"소는?"

"엄므우 엄무우"

"닭은?"

"꼬꼬 꼬꼬"


요녀석 어쩌나 한 번 보자.

"거북이는?"

"거부욱 거부욱"


머리를 닦아주다 젖은 녀석을 꼭 안아버렸다.


눈가 주름이 또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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