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차 다니는 곳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큰 사거리 조금 못가 초등학교로 통하는 육교가 있다.
녀석은 육교를 만나면 건너지도 않을 길인데 꼭 육교계단을 한 번에 두 계단 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계단 오르내리기를 한참 하던 녀석이 일명 ,뻥놀이,를 하자며 날 육교 계단 중간쯤에 앉혔다.
"할머니, 오늘 비가 너무 많이 내렸죠?"
"오늘 언제?"
"뻥이야~~~"
"미남아, 할머니 지금 집에 가야 되니까 혼자 여기서 엄마 기다려야 돼~~"
"왜요?"
"뻥이야~~~"
어느 날. 걷다가 우연히 짓궂은 장난을 쳤던 건데
녀석에게 재밌는 놀이가 되고 말았다.
사거리에서 중장비차가 뜸하다 싶으면 밀고 들어온다.
"할머니, 뻥놀이 해요"
모든 일에 싫증을 잘 내는 녀석인데 이 놀이 때는 만큼은
진득한 아이가 돼서 또또 병앓이를 한다.
육교에 앉아서 마지막 뻥을 약속하고
"어젯밤에 별들이 놀이터에 내려와 시소를 탔다?"
"큰 별들이 탄 시소가 작은 별들이 탄 시소를 땅에 쾅 부딪치게 해서 작은 별들 엉덩이에 밴드를 붙여줬대"
"그래서요?"
"뻥이야~~"
"또요" "또요"
"미남이 세 살 때 여름에도 눈이 와서 눈사람 만들었다?"
"정말요?"
"뻥이야~~~"
"그런데 미남아..... "
"할머니는 이 놀이를 계속하는 건 정말 신나는데..... 그런데 걱정되는 일이 있어"
"왜요?"
"어느 멋진 나라에 산에서 양 떼들을 돌보는 형아가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아가 대게 심심한 거야. 그래서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
<쭈욱 ~~중간생략 >
"그런데 어느 날 ᆢ정말 늑대가 나타난 거야 ᆢ 도와주세요 늑대가 나타났어요 큰소리로 외쳤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을까? 미남이 생각에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아무도 안 왔어요"
"왜 안 왔을까?"
"또 거짓말인 줄 알고 사람들이 안 왔어요"
내 작전에 완벽하게 말려든 미남이는 수백 마리 양들이 죽어서 불쌍한 건지 아니면 양치기 형아가 혼날까 봐 걱정인 건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어떡해, 어떡하지?"
(그 순간에도 나는 우리 미남이 눈이 보통 때도 저 정도 크기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눈은 눈이고 이제 쇠뿔을 뽑을 차례다.
" 뻥이야 놀이 엄청 재밌잖아, 미남이도 신나 하고 할머니도 마찬가지고"
"그렇죠오"
"그런데 이 놀이를 계속하면 습관이 돼서 친구들 한테도 할 거고 선생님한테도 할거 아냐...."
"그렇죠오"
"그러다 보면 미남이가 하는 말을 모두 뻥으로 알아들을 거 아냐.... "
"그렇죠오"
"너무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지 않아?"
"그렇죠오"
미남이는 주술사의 주술에 걸린 듯
그렇죠~~~ 그렇죠~~~를 연발했다ㆍ
눈동자 크기는 다시 제크기를 찾았는데 깜빡이는 정도가 한결 깊어지고 무겁게 보였다.
난 큰 인심 쓰듯 하루에 딱 세 번씩만 뻥이야 놀이를 하기로 약속하고 이 놀이는 우리 둘만 하는 비일 놀이로 못박은 뒤 다른 사람과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손가락까지 걸었다ㆍ
모래놀이를 하고 돌아온 어느 날, 자동차 정비소 놀이를 더 하고 씻겠다는 미남이에게 목욕 끝내고 <바로> 큰 정비소를 차려주겠노라 약속을 하고 욕실로 데리고 가는데 성공했다.
빠르게 목욕을 마치고 뽀송뽀송 머리를 말리고 온몸에 촉촉한 로션을 듬뿍 발라주고 깔끔한 옷을 챙겨 입힌 후 침대에 기대 잠시 쉬고 있었다ㆍ
그새 중장비차 고장 났다며 레미콘트럭이랑 포클레인이랑 덤프트럭을 가져오더니 이건 바퀴가 고장 났고 저건 공사해서 먼지가 많아 세차를 해야 한다며 내 앞에 디밀었다ㆍ
"할머니 피곤하니 쪼금만 쉬었다 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덤프트럭을 두 팔에 안은채 눈을 사정없이 위로 치켜뜨더니
"목욕하면 놀아준다고 했잖아요!!!"
이어 두 눈으로 쌍레이저를 뿜으면서 톤을 올려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다가 할머니 양치기 형아되면 어떡할라고 !!!!"
난 침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레미콘차바퀴를 교체하고 먼지를 가득 뒤집어썼다는 노란색 덤프트럭도 깨끗하게 세차했다ㆍ
덕분에 난 양치기 형아가 아닌 여전히 미남이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