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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Mar 03. 2023

말문이 막혀

다섯 살 미남이

알레르기로 고생 중이던 미남이 다섯 살 봄날이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용준이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엄마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소리가 모두 닳아졌나 봐요"

(여기까지는 전해 들은 말임)


"미남이는 말이 너무 많아"

자주 듣던 지적이 떠올랐나 보다.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 아파트 뒤 언덕을 산책했다.


한적한 곳이라 난 마스크를 벗었고 녀석에게도 잠시 벗으라는데도 코로나 비이러스가 들어오면 큰일이라며  양손으로 귀에 연결된 마스크 끈을 한번 더 여몄다.


잡은 손을 힘껏 흔들면서 미남이의 변함없는 애창곡, 은하철도 999, 를  부르며 함께  걷는데 갑자기 목이 까끌거려 수풀사이에다 침을 뱉었다.


침을 아무 데나 뱉으면 안 된다고 훈장질을 하는 녀석에게 입안으로 날벌레가 들어갔다고 둘러댔다.



 "아이 참, 날벌레는 왜 내 입으로 들어오는 거야?"

말 마치기 무섭게 마스크  끈을 풀더니 바닥에 "퉥" 침을 뱉으며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막아내는 KF94 마스크에 날벌레가 통과했다.

뉴스 속보감이다.


해 질 무렵, 밖에서  더 놀겠다고  버티는 아이에게는 어쩔수 없다.  당근을 내미는 수 밖에.


요즘 병원놀이에 한창 재미를 들인 녀석에게 오늘은 특별히 환자를 세명에서 다섯 명으로 늘리겠다고.

그리고 수술도 더 많이 하자고.


난 의사. 녀석은 간호사로 미남이에게 우린 환상의 파트너,

나에게는 환장할 파트너로 진행되는 수술도 다섯 명 모두 하자고 말이다.


협상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 오늘 병원놀이로 날 꼬신 거예요?"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 안 나는 걸 보면 말문이 딱 막혔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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