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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Mar 05. 2023

종교도 종교 나름

미남이 네살

중장비차 지나는 걸 보겠다는 미남이와 큰 도로를 걷다가 미남이 어린이집을 지나게 됐다.

곧 해가 질 시간인데 미남이는 어린이 집 입구로 날 끌었다.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미남아, 너무 늦었는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가는 게 어때?"

 

"갠타나요 함머니 , 우디 턴댕님 탁해요"


며칠전만 해도 화장실에서 나에게 혼났던 일을 꺼내더니 나, 엄마, 어린이 집 선생님 순서로  나쁜 사람 순위권에 줄 세웠던 아이다.

그 사이 선생님은 개과천선이라도 하셨나 보다ㆍ

비결이 궁금하다.



편의점서 과자 사서 나올 때는 나를 가장 사랑한다던 애가 과자 부스러기가 입술에서 채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이모가 젤 좋다고 말 바꾸기를 하는 아이다ㆍ


어린이집 들어가기 바쁘게 놀이터 가장자리에 주차된 흰색  자동차  문을  거칠게 열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왼쪽 차문으로 쏙 빼더니 팔을 문에 탁 걸쳤다ㆍ


그리고 한 손으로 핸들 위쪽을 잡고 우측으로 재빠르게 몇 바퀴 돌리고 반대 방향으로 또 잽싸게 몇 바퀴를 돌렸다ㆍ


똥폼이 제대로다.


나한테 "야!!타~~"할 것 같다.


나에게 경주를 하자고 했다ㆍ



아파트 놀이터에서 녀석은 킥보드를 타고 나랑 주차장 한 바퀴 도는 시합처럼.



좁은 운동장이며 자동차는 킥보드처럼 빠르지 않으며 무엇보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이 정도는 껌이다.


내가 빠르면 빠르다고 훈장질. 저만치 뒤에 쳐지면 늦다고 짜증.

꼴에  <스릴 맛>은 알아서 한 두 걸음 뒤에서 잡힐 듯 말 듯 따라붙어야 딴소리 안 하는 녀석이다.


그날도 욕먹지 않을 만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자동차랑 뛰고 있는데 예쁘게 양갈래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가 엄마와 나왔다ㆍ


"딘서야, 나 운전 달하디?"


차를 멈추더니 고개를 빼고 한손으로 빙글빙글 핸들을 돌리면서 말했다.


"응, 너 운던 달한다아~~"


"미남아, 나 후야푸 잘하디?"


여자 아이는 20 센터 냄비뚜껑만 한 동그란 플라스틱 링을  바닥으로 슝 던졌다.

(좀 더 사실적 표현을 하자면  패대기를 쳤다)


"응, 딘서  후야푸 잘한다아"


"근데 딘서 너 여기 왜그예?"


한쪽 볼에 빨갛게 벌레 물린 자국을 보고 말했다.


"응 할머니 집에서 그래떠"


"그래? 아팠겠다, 이데 갠탄아?"


"응, 이데 갠탄아"


"다행이다, 딘서야 됴심해야디이"


"그래, 고마워"


흡사 대화가 어린이 바른말하기 교본이라도 완독한 아이들 같았다.


집에 와서 목욕시키고 로션을 발라주는데 낮에 생선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따끔거렸다ㆍ


"아야"

"왜요 함머니?"


손바닥을 내밀고  낮에 다친 얘기를 했다ㆍ


"우와 아프겠다아, 피 많이 나떠요?"


내 손을 쳐다보며 오만상을 찌푸리는 미남이가 마냥 기특해 녀석의 두 볼을 감싸서 아이고 이쁘다고 키운 보람이 있다고 마구 비벼댔다ㆍ


"미남이가 다친데 호~~ 호~~~ 해주면 나을 것 같아"


내 손을 잡아끌더니 입술을 나팔처럼 동그랗게 말고는 내 엄지 손가락에 대고 호~~호~~~ 불었다ㆍ


"이데 괜차나요?"

"응 괜찮아, 미남이가 치료해 주니 금세 나았네"


정말 괜찮았다ㆍ


미남이가 동그랗게 입술을 말아 호~~ 호~~ 치료해 준 엄지손가락은 정말 괜찮았다ㆍ


가시 찔린 손가락은 검지였고 상처도 워낙 미미해서 보일랑 말랑한  정도였다.


"할머니옷 어때? "하면

레미콘 트럭에 고개를 박은채로

"우와, 예쁘다아"  하는 아이다ㆍ


치료를 마친 미남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어린이집 가방에서 영어책을 꺼내왔다ㆍ

"바여끌 바여끌"

오토바이 그림을 보면서 보란 듯 바여끌을 두 번 읽더니

영어 선생님 엄청 예쁘다고 했다.


"이모보다?"

"네"


 '에뽈 에뽈' 두 번을 읽더니

"근데, 함머니 사실은 이모가 더 예뻐요"

"이모한테 말할 거예요?"

"응 꼭 말해줄게"

"그럼 이모가 엄청 좋아하겠죠?"

"엉어 턴탱님 말은 안할꺼됴?"


이 녀석 말의 온도와 가슴의 온도차가 한라산과 백두산 거리만큼 아득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런 안미남군 흉을 봤더니 미남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말도 예쁘게 잘해서

천냥빚도 갚을 놈이라며 내가 흉본걸 금세 칭찬거리로 둔갑을 시켰다. 상습범이다.


심지어 진짜 미남이 같은 애도 없다며 미남이 찬양까지

시작했다ㆍ


지난번 내리막길에서 킥보드 타고 가자고 했더니

그러다가 넘어지면 무릎 박살 나니 절대 안 된다며

이모할아버지도 조심하라고 했다나.


영상통화 할 때도 우리 가족들을  순서대로 한 명 한 명 다 소환해서 얼굴도장을 찍게 만들고

집에 왔다 돌아갈 때도 할아버지더러 업고 지하주차장까지 데려다 달라는 거 보라고.


야구 그만 보고 놀아달라고 티브이를 껐던 녀석이 좋아하는 이모 오니까 방에서 밀어내며 할아버지는 가서 야구 보라고 했던 일까지 읊어댔다ㆍ


"이게 이렇게 찬양받을 일이야?"


누가 이런 생각을 하겠냐고 ....미남이나 되니까.... 라며

우리 미남이는 보통애가 아니라고 탕탕 못을 박았다ㆍ


무교인 우리 가족에게 미남교가 전파됐다ㆍ


이러다가 머지않아 은혜로우신 미남님으로 시작되는 찬송가를 부르고

미남이를 본받아서 ... .,탁탁탁탁 불경을 읊고

이른 새벽 녀석의 사진 앞에 정한수를 올리고 미남님 미남님 굽어 살펴주시옵고.....,


어허~~~

종교도 종교 나름이다.

나라도 정신줄을 바짝 조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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