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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Mar 11. 2023

난감하네

다섯 살 미남이

미남 군이 다니는 어린이집 차량이 아파트 하원차 중  가장 이른 시간에 도착한다.

다음 하원차가 올 때까지 미남 군은 하릴없이 킥보드로 빈 주차장을 몇 바퀴 돌거나 먹이활동 중인 비둘기를 놀라게 하거나 놀이터 옆 어르신 쉼터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사흘 전부터 여덟 살 초등학생 누나가 엄마와 놀이터에 나왔다.

누나도 혼자 미남 군도 혼자.

단둘이 있는 놀이터.

쭈뼛쭈뼛 서로 살피던 아이들.

너  외롭냐?

나도 외롭다.

눈빛을 주고받았는지 두 아이는 내가 챙겨나간 공을 가지고 공놀이를 시작했다.


이십여분 후 미남 군은

 '누나는 누구세요?' 하는 표정을 하고

공을 챙겨서 하원차에서 내리는 친구에게 쪼르르르

달려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같은 시간. 또 누나가  혼자 놀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미남이 올 때 됐냐고. 딸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둘이 어설픈 줄넘기 놀이, 공놀이를 하더니 노랑 차가 오는 걸 보고 또 쪼르르르 안면몰수를 한다.


저 배신자.

얼굴이 그리 두껍지 못한 나는 이런 미남 군 보호자 노릇으로 적합한 스타일이 못된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라도 대신 놀아주고 싶다.


다음날.

나를 본 아이 엄마가 딸이 미남이 언제 오냐고 묻는단다.

"그래요? 곧 와요"

웃는 낯으로 얘기했지만 오늘은 미남이가 상도덕을 좀 제대로 지켜주기를....,

바닥난 염치라 고개를 못 들겠다.


"누나 놀자~~~"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미남이도  뛰고 누나도 뛰어오고.

만난 지점에서 손을 잡더니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잘 놀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다 휴대폰 검색을 막 시작하려던 차였다.


"근데 누나 지성이 형아는 나쁘다?"


내 귀를 스친 이 말은 바람이 전하는 말이 아니다. 분명 이미남 군의 망언이다.

놀이터에서 기저귀 하던 세 살에 만나 3년 동안 끈끈한

우정을 닦아온 절친 형아 험담을 만나지 이제 겨우 3일 된 누나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 잘못된 행동을 아이 엄마에게 일러바치지 않기

@없는 곳에서 친구 험담 금지

@'툭하면 너 나빠, 이제 너랑 안 놀아' 토라지기 금지.

요즘 자주 타이르는 말이고

어제도 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일이다.



다른 하원차가 도착해 어수선한 틈에 미남 군을 담벼락 아래로 끌었다.

친구 없을 때 흉보는 거 하지 말랬지!!!

몇 번을 얘기해야 하는뎃!!!


"형아가 어제 ...., "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참이다.


미남이는 친구들이랑 놀 자격이 없다고 앞으로 집에서 혼자 놀라고 야단을 쳤다.

"이럴 거면 그만 집에 가자"


'싫어요.... 안 그럴게요.... 안 들어간다고요..... '

이런 말로 버티기에 들어가야 하는 미남 군, 무슨 일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앞장서서 집  입구 쪽을 향해 걷는다.


누나도 친구도 신난 놀이터를 순순히 지나친다.


막 뱉어낸 말을 뒤집을 수도 없고 조금 당황한 채로 난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늘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싫은 미남이가 내 뒤를 따라 끌려오듯 걸었는이날은 뒤집힌 액자 같다.


집에 들어간 미남 군,

놀이방으로 들어가 잠시 놀더니 놀이터가 내다 보이는 소파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내 옆으로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오더니

"할머니 이제 안 그럴 거예요"

"......., "

고개를 내 가슴팍으로 들이밀면서 나름 애교 방출 작전을 했지만 내 무반응에 머쓱한지 일단 물러난다.


"할머니, 제가 저기 앉아서 뭐 했는지 알아요?"

"........, "(알게 뭐냐?)


"저 반성하고 있었다고요"

"........, "

네가 무슨 반성 자판기냐, 다섯 살 인생  반성 기네스북이 목표냐?


휴대전화가 울렸다.

녀석이 흉봤던 형아 엄마다.

미남이 왜 놀이터에 안 나왔냐고.


"우리 미남이는 이제 형아랑 못 놀 것 같아요"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올렸다.

형아 없다고 그새 흉을  봤는데 어떻게 같이 놀겠냐고.


미남이를  바꿔달란다.

"미남아, 형아가 미남이를 속상하게 했어?"

"흑흑 흑흑...., "

"어제 형아가 공찰 때 날 아프게 해 놓고 사과도 안 하고 흑 흑....., "

삐돌이에 뒤끝도 장난 아니다.

"와서 형아랑 얘기해 보는 건 어때?"


놀이터에서 형아에게 사과를 받아내고(형아 엄마 강요에 의한 억지사과가 아닐까) 잘 노는가 싶더니

형아가 괴물놀이  말고 공놀이를 하잔다며 금세 뾰로통해졌다.

삐짐병이 도진 것이다.


"형아 미워, 형아랑 안 놀아" 딱 그 타이밍인데


(@'툭하면 너 나빠, 이제 너랑 안놀아' 토라지기 금지)

이 말이 봄바람처럼  미남이 머릿속을 휘 훑고 지나갔나 보다.


"흥, 나 저쪽 가서 놀 거야!!!"


그 말이나 이 말이나 같이 못 놀겠다는 뜻 아닌가.

문맥상 같은 의미, 다른 표현.

교육의 목적은 교화일 텐데 난 아직도 실패중이다.

녀석은  간접화법으로 교묘하게 비틀어서 말하는 것으로 순간만 모면하고자 잔꽤를 부리고 있었다.


저녁시간.

얼마 전 툭하면 '미치겠네'를 습관처럼 하던 미남 군.


기특하게 입에서 떨쳐냈던 기억을 얘기하며 이런 습관도 그때처럼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미남이니까 가능하다고 우쭈쭈 분위기를 잡는데


"할머니, 이런 건 어른돼서 고치면 안 될까요?"


말문이 막힌다.

이러다가 벙어리 삼룡이 아니 실어증  할머니가 될까 무섭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좋은 말로 하지 굳이 왜 혼을 내는 거예요? "


오은영 박사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묻고 싶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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