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의 딸, 스카치위스키에 빠지다
<명정 40년>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저자인 변영로 작가에 못지않게 술을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막 대학생이 된 무렵의 저에게 주셔서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은 술에 만취한 문인들이 벌인 기행과 이를 조장한 술에 대한 예찬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필집입니다.
아들에게 처음 추천한 책이 술꾼들의 주사 이야기라니 아버지의 술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만 이해하고 공감할 내용은 아닙니다. 지금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낮은 상태였건만 한문이 섞인 문체가 어색하긴 해도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접하고 오래간만에 <명정 40년>을 떠올렸습니다. 제목만으로도 술을 사랑하는 문인들이 질펀하게 두주불사식으로 술을 퍼마시며 벌이는 해프닝이겠거니 넘겨짚었습니다.
그 짐작은 맞았습니다만 주종은 미처 맞추지 못했습니다. 작가가 애정하는 술은 조니워커 블루였습니다. 더구나 그녀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였기에 그 생경함은 배가 되었습니다. 런던 망명 시절에 칼 마르크스가 즐겨마시던 술이 버번위스키라고 하는 격이라고 할까요?
블루를 사랑하는 작가에 대한 이질감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친근함으로 바뀝니다. 어쩌면 저도 조니워커를 좋아해서 느끼는 동지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루를 사서 마실 형편은 아닙니다만 몇 등급 아래인 블랙은 집에 쟁여두고 먹는 술입니다.
그동안 블루에 대한 호기심은 별로 없었건만 책을 덮고 나니 온통 블루 생각입니다. 블랙만으로는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는데 약소하다는 우려가 듭니다. 마침 2주 뒤에 해외 출장을 가야 합니다. 이참에 한 병 사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 정도면 디아지오가 정작가님을 모델로 섭외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