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컨 Oct 05. 2023

맥킨지가 만든 인공지능에 여성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컨설팅의 젠더 다양성

# 맥킨지의 생성형 인공지능 릴리(Lilli)

챗GPT 이후 불타오른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관심이 좀처럼 식지 않는 느낌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사람인양 천연덕스럽게 하는 답변의 충격은 약해졌지만,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영역과 산업은 더욱 강하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컨설팅사가 이런 핫한 판에 빠질 리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컨설팅사가 돈을 벌 기회입니다. 남들보다 발 빠르게 이슈를 선점해야 고객사를 욺켜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맥킨지도 자체 제작한 생성형 인공지능 '릴리'를 다소 성급하게 발표한 느낌입니다. '성급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아직 실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 가을에나 출시한다고 공표했을 뿐입니다. 아직 실체가 없기에 '릴리'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 동작할지는 대략 상상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챗GPT를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맥킨지의 컨설팅 자료를 학습한 '릴리'가 컨설턴트 혹은 고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이겠지요. 

 

저의 흥미를 끈 것은 인공지능의 성능이나 작동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인공지능에 붙여진 이름인 '릴리(Lilli)'의 유래였습니다. 발음은 같지만 백합을 뜻하는 릴리(Lily)가 여성을 상징하듯, 분명히 여성의 이름입니다. 인공지능에 성별이 있을 리 만무한데 왜 여성의 이름을 붙였을까가 궁금했습니다. 


# 릴리에게 이름을 물려준 릴리언 돔브로우스키

맥킨지의 자료를 보니 '릴리'는 맥킨지 최초의 전문직 여성인 릴리언 돔브로우스키(Lillian Dombrowski)의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1945년에 회계사로 맥킨지에 입사한 그녀는 재무 회계, 인사 관리, 기록물 관리 등 법인을 운영하는 업무를 했다고 합니다.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컨설턴트는 아니고 이들을 보조하는 사람들, 흔히 어드민(Admin)으로 불리는 직군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회사 아카이브에 남아 있을 정도이니 대단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무려 35년을 맥킨지에서 일했습니다.


맥킨지 최초의 전문직 여성인 릴리언 돔브로우스키(Lillian Dombrowski)


어드민은 숫자는 적지만 컨설팅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파트너 일정관리, 경비처리, 연락대행 등의 비서 업무부터 재무관리, 인사관리, 총무관리, IT운영 등 공백이 생기면 매일매일의 회사 운영에 차질을 초래하는 후선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입니다. 파트너와 컨설턴트가 컨설팅 사업을 잘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에 친절하고 상냥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드민은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릴리의 역할이 컨설턴트의 대체가 아니라 돕는 역할이기에 어드민의 이름을 따서 붙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인공지능의 컨설턴트를 대신할 정도로 성능이 월등해진다면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을까요? 컨설턴트 수준으로 고도화된 인공지능에는 '마빈'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 남초 컨설팅의 과거

어드민과 달리 컨설턴트는 남성의 비중이 높습니다. 과거부터 컨설팅은 남자의 영역이었습니다. 컨설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여성인물을 만나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릴리언 길브레이스(Lillian Gilbreth) 외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성이 없습니다. 그녀는 19세기말부터 활동한 테일러리스트인 프랭크 길브레이스(Frank Gilbreth)의 아내이자, 그 자신도 뛰어난 공학자였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1911년 컨설팅 엔지니어인 "프랭크 길브레이스"를 설립해서 공동으로 운영했는데, 남편이 1924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회사 이름을 "길브레스"로 변경해서 계속 운영했습니다. 남편보다 무려 48년이나 더 살며 1972년에 93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컨설턴트이자 연구자, 교육자,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이스 이후에 그녀 만큼 주목받은 여성 컨설턴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여성 컨설턴트가 없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몇몇 컨설팅사의 사례를 찾아보면 여성이 컨설팅에 진출한 시점은 대략 1960년대 이후로 보입니다. 맥킨지는 1964년에야 처음으로 MBA를 졸업한 3명의 여성을 컨설턴트로 채용했다고 하고,  BCG는 1968년에야 최초의 여성 컨설턴트를 뽑았으며, 커니는 1973년에야 여성을 컨설턴트로 받아들였습니다. 컨설팅을 지망한 여성이 적어서인지, 컨설팅사가 여성을 배척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만 여성이 컨설팅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는 50여 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여초 컨설팅을 바라지는 않으나...

믈론 지금은 그 옛날보다는 여성 컨설턴트의 수는 늘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 컨설턴트는 희귀한 존재였습니다. 전설의 유니콘급은 아니지만 공대에서 여성을 만나는 것과 같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꽤나 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봅니다. 고객사와 컨설팅사의 성비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어떤 업종의 고객사이냐에 따라서 격차는 변하지만 높은 확률로 컨설팅사가 남초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의 비율은 드라마틱하게 줄어듭니다. 이사 직급 이상의 경우 십중 팔구는 남자 컨설턴트입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의 비율이 지금보다 더 높은 컨설팅업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환경이 정상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쪽에 바람직하지 않다면 다른 쪽에도 바람직할 리 없습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 B컷#1. 구성 구상


매거진의 이전글 Big 4 회계법인 간 컨설팅 경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