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 경영 컨설팅의 이해상충 문제
PWC 미국이 컨설팅 사업을 축소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PWC 미국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컨설팅 사업을 축소할 계획입니다. 컨설팅 사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감사 대상 기업과의 이해상충 방지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회계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PWC를 포함한 Big 4 회계법인이 미국에서 컨설팅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가 15억 달러(약 2조 원)이라고 하니 막대한 규모의 사업을 포기하는 셈입니다. (관련기사 : 기사1)
분명히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이해상충 방지라는 고상한 이유로 몇 천억 원 대의 돈을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니 PWC 호주가 저지른 세금 스캔들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어보니 PWC 호주가 저지른 일이 자못 충격적입니다. PWC 호주는 호주 정부를 대상으로 조세 업무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징수 계획을 일반 기업들에게 누설했다는 혐의입니다.
일반 기업은 PWC 호주가 제공한 징수 계획을 토대로 절세 방안을 수립했을 테니 호주 정부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상황입니다. 만약 이 사건이 들키지 않았다면 PWC 호주는 꿩 먹고 알 먹는 천재적인 사업 수완을 발휘한 셈입니다. 호주 정부에는 세금을 걷는 창을 팔고, 일반 기업들에는 이를 막는 방패를 판 격이니까요. (관련기사 : 기사2, 기사3)
하지만 2015년에 PWC 호주가 벌인 범죄는 결국 들켰고 CEO를 포함한 수십 명의 경영진이 물러났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를 상대로 하는 PWC 호주의 사업은 단돈 1달러에 제3자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청문회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뭇매를 맞는 상황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PWC 호주가 벌인 일입니다만 PWC 미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PWC 호주가 흘린 정보는 PWC 미국에도 공유되었고, 결과적으로 호주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에게도 흘러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주범은 PWC 호주이고 공범은 PWC 미국인 셈인데, PWC 호주가 아니라 PWC 미국이 컨설팅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는 미국의 규제가 강력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은 자본시장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서는 특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회계감사 법인의 부정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미국 정부로부터 혹독한 고초를 당하느니 미리 선수를 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입니다.
하지만 PWC 미국의 컨설팅 사업 포기는 선언하는 시늉에 그치고 실제로 실행될 공산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컨설팅 사업의 포기로 감소할 매출 손해는 확실하지만 얻게 될 이익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확실한 손해가 더욱 뼈아픈 법이기에 컨설팅 사업을 줄이는 과정은 무수한 반발을 거치며 좌초될 확률이 높습니다.
심리학적인 손실 회피 성향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비감사 업무 제한은 19세기부터 계속해서 제기된 이슈이지만 회계법인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를 해결한 적은 없습니다. 대공황 이후에 제정된 글래스-스티걸법, 엔론 스캔들 이후에 만들어진 사베인스-옥슬리법과 같이 규제 당국이 칼을 뽑기 전까지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PWC 미국의 컨설팅 사업 축소는 흐지부지될 것이 명확합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3년 | 『글래스-스티걸법』 규제가 만든 첫 번째 기회
1987년 | 회계법인 Big 8의 컨설팅 사업 확대
2001년 | 엔론의 파국, 회계법인의 경영컨설팅 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