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법인의 감사 독립성 이슈
흥미로운 기사를 읽어서 소개합니다. 호주의 회계학자들이 호주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Big 4 회계법인의 윤리와 책임에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으니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보고서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놀랍지 않은 내용입니다. 타깃이 Big 4에만 집중되는 측면이 억울할 수도 있으나 회계법인의 감사 독립성 확보 이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요 근래 컨설팅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만 딱히 대형 사고가 없기에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습니다.
대형 회계법인은 매년 수많은 기업의 재무감사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개중에는 정말 잘못된 감사 업무의 사례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번에 제출된 보고서의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의 사례를 만들어서 Big 4를 공격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보고서는 "KPMG가 세븐일레븐 임금 절도 스캔들에 연루되었으며 스캔들에 휩싸인 기간에 커먼 웰스 은행을 감사하였다"고 비난했는데, 실제로는 그런 스캔들이 없었고 커먼 웰스 은행을 감사한 적도 없었다는 식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회계학자들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인 바드를 사용했는데, 바드가 있지도 않은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쓰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인공지능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진짜처럼 꾸며서 답변하기도 하는데 이를 인공지능의 환각(Hallucination)이라 합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답변을 내놓아서 거짓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면 다행입니다만, 때로는 너무나 교묘해서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보고서를 작성한 호주 회계학자들이 이러한 운 나쁜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Big 4로서는 억울한 일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로도 충분히 비판을 받고 있는데, 하지도 않은 일로 모함을 당한 셈이니까요. 학계와 척을 지기 싫은 회계법인들이 보고서 수정만으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일반 기업이나 영리 단체가 이런 일을 벌였다가는 거액의 소송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사건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활용이 많아질수록 이런 문제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겁니다. 저도 가끔씩 급할 때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쓸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에게 속지 않기 위한 한 가지 팁은 답변에 대한 소스까지 달라고 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끔은 소스까지 지어내서 답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인공지능의 답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 글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거나, 저자의 감상을 적는 시리즈물의 일환입니다. 시리즈물의 취지와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이 글과 관련된 <거의 모든 컨설팅의 역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987년 | 회계법인 Big 8의 컨설팅 사업 확대
2001년 | 엔론의 파국, 회계법인의 경영컨설팅 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