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팀과 산업은행 구성원을 응원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발주된 컨설팅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프로젝트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대한 컨설팅이었습니다. 어떤 결과를 제시하든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주제였기에 과연 독이 든 성배를 누가 들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였습니다. 결국 사업자가 정해져서 컨설팅이 완료되었습니다만 예상처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각 정당과 지역, 산업은행 직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주제이기에 내년 총선까지, 어쩌면 그 이후에도 계속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작년에 치러진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22년 1월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다양한 공약을 쏟아냅니다. 여러 가지 공약 중에서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부울경을 겨냥한 2개의 공약이었습니다. 하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였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주요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필이면 콕 집어서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합니다. 당선된 이후에 수많은 공약이 유야무야 되었지만 산업은행 이전 공약은 잊히지 않고 계속 추진됩니다.
올해인 2023년 2월에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에 대한 컨설팅 수행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게시합니다. 기타 공공기관이기에 사업의 규모와 기간에 따라서 준수해야 하는 절차를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고된 컨설팅의 이름은 "정책 금융 역량 강화방안 마련을 위한 컨설팅"이었지만 내용은 부산 이전 방안에 대한 검토였습니다. 3개월간 10억 원의 예산으로 집행되는 꽤나 큰 컨설팅이기에 주제만 달랐다면 다수의 컨설팅사가 의욕적으로 달려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후문입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삼일회계법인이 컨설팅 수행사로 선정되어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3월부터 3개월가량 수행한 컨설팅 결과는 올해 7월에 부서장급 이상 설명회를 통해서 산업은행 내부에 공유되었습니다. 부산 이전 안으로 2가지 옵션이 제시되었는데 첫 번째는 '지역성장 중심형'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기능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이고 두 번째는 '금융수요 중심형' 방식으로 본점은 부산으로 이전하지만 수도권에 상당수의 조직을 두는 방안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지역성장 중심형'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컨설팅 결과가 공개된 7월 이후 현재까지 5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산이전을 반대하는 산업은행 직원들의 이탈 급증을 우려하는 기사,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우수 인재 이탈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기사,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무산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기회가 없다는 기사, 산업은행 이전을 시작으로 다른 공공기관의 이전도 주장하는 지방정부에 대한 기사 등으로 어지럽습니다. 이해관계자별로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인지라 쉽게 결론이 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삼일회계법인에서 컨설팅을 수행한 PM과 프로젝트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산업은행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컨설팅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지 뻔히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으로 보이도록 살 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보고서의 문구를 썼다가 고쳤다를 수십 번 반복했을 겁니다. 실무 과장, 차장, 부장, 부행장, 수석부행장, 회장에 이르는 복잡한 계통 보고를 거듭하면서 매번 다시 고쳐야 했을 겁니다. 설명회에 참석한 부서장들의 날 선 질문과 매서운 비판에 진땀 흘려야 했을 겁니다. 혹여나 국감에 불려 가지 않을지 마음고생도 했을 법합니다.
결국 정치적인 타협으로 정리되겠습니다만 완전한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그동안 마음고생을 할 산업은행의 직원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산업은행이 정책금융 기관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내부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흔들려 왔기 때문입니다. 민영화, 개인금융 확대, 정책금융 분리, 지주회사 전환, 지주 회사 해체, 정책금융 통합, 개인금융 폐지 등 현재의 산업은행을 만든 일련의 의사결정들은 외부의 힘에 떠밀려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산업은행 구성원들이 마음의 평안을 찾는 날이 곧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