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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길 Oct 06. 2023

언양소년단 창립 101주년을 맞이하여

이병길  2023.10.06

언양과 울산은 천도교와 인연이 깊다. 경주 출신 최제우는 울산 여싯골에서 을묘천서(乙卯天書)를 받고 깨달음을 시작하여 민족에게 사람이 하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바탕으로 동학(東學)을 창도했다. 동학은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天道敎)로 개창되고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언양시장에 1919년 4월 2일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의 중심 세력은 천도교인들이었다.

사람이 한울님인 것처럼 어린이, 소년도 마찬가지라는 정신이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탄생시켰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청소년으로 자란다. 나라의 희망과 내일을 살리는 일은 어린이, 청소년을 살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192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난 소년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뿌리였다.

울산지역의 소년단체는 일제강점기에 30개가 넘었고, 가장 먼저 1923년 8월 4일 중남소년학우회가 창립되었다. 그 후 1923년 10월 6일 오후 언양청년회 회관에서 언양소년단(일명 언양소년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신주극(신학업)의 개회사와 최수한의 취지 설명에 이어 임원 선출이 있었다. 투표 결과 신말찬(신고송), 이명돌, 김로시, 하창윤, 김용대, 정홍조가 임원으로, 김기오가 단장으로 당선되었다. 언양공보 졸업생인 임원들은 언양 독립만세운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한 개인의 역사적 경험은 그 삶의 전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언양소년단은 창립 이후 추계운동회를 열고, 소년소녀 가극을 공연했다. 이때 가극 준비는 신고송이 했다. 이 경험이 그가 훗날 극작가로, 아동문학가와 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원천이었다. 언양의 신고송과 정인섭, 울산의 서덕출, 대구의 윤복진, 서울의 윤석중이 1920년대 아동문학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소년단의 기본적 목표는 지덕체(智德體)의 연마였고, 이는 민족해방을 위한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토대가 되었다. 아침마다 언양읍성 주변을 뜀박질하던 언양조기회 소식은 서울의 방정환에게도 알려져 그가 언양을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방정환은 울산의 동요시인 서덕출을 전국에 알리기도 했다.

언양 소년들은 청소년으로 성장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언양소년회 간부 이동개의 ‘일제 물품 안 사기 운동’ 연설에 자극받아 불매운동에도 나선다. 1928년 12월 언양소년단원 김동하는 붓글씨로 “조선 소년들아! 일본인을 타도하여 조선을 회복하자! 조선독립 만세!”를 쓰고, 태극기를 그려 언양주재소 게시판에 붙이며 항일의지를 과감하게 표출했다. 이 일로 이동개와 김동하는 구속이 된다. 1930년 1월에는 오영수의 셋째 동생 호근이 언양주재소에 격문을 뿌리고, 1932년 5월 메이데이에는 언양 여러 곳에 격문이 나붙은 일로 홍정수와 이동개가 검거된다. 일제에 항거하던 언양 소년들은 이후 언양 사회운동의 중심인물로 성장한다.

모든 사람은 성장한다. 하지만 성장의 계기를 언제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소년들이 지혜와 용기와 힘을 기를 청소년 단체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녀의 수가 적은 데 따른 과잉보호의 탓일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도 청소년 단체들의 활동은 미흡한 상황이다. 20여 년 전 필자의 막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마치고 멀리까지 걷는 행사에 참여했다. 중고등학생들도 1박 2일 야영을 하고, 교사들과 영축산이나 지리산 등반을 같이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단체적 경험의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청소년 한울님’을 안전가옥에 가두면 ‘주체적 한울님’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안전가옥에 갇혀 삶이 지나치게 안전하면, 실제적 위험에 능히 대처하지 못한다. 한울님을 짐승처럼 사육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위험을 알 때 가장 안전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목도 문제다. 무조건적 자유인은 때론 방탕아가 되거나 개념 없는 아이가 되는 탓이다.

디지털 문화가 갈수록 확산하는 시대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지식 교육도 필요하다. 필자는 50여 년 전 초등학교 때 고전 읽기 대회를 경험한 덕분에 논어, 성경, 삼국유사 등 동서양 고전을 읽었고, 그것이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덕체가 어우러진 깨닫는 교육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소년들을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한 청소년 단체가 많아져서 그들의 삶이 미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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