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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길 Sep 17. 2023

나는 오늘 통도사에 간다(6)-무풍한송길을 걸어볼까요.

이제 무풍한송 길을 걸어볼까요     


이병길(지역사 연구가)     


통도사에 가려면 무풍한송 길을 걸어봐야겠지요. 안 걸어본 사람은 통도사를 다녀가신 분이 아니라, 스쳐간 것입니다. 무풍한송 길은 솔숲 산책길로, 바람에 늘 푸른 소나무가 춤추는 길로, 산문입구부터 청류교까지 약 1km입니다. 두 개의 돌기둥이 이제는 시발점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소나무들이 휘어진 느림의 길입니다. 2018년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시상식’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숲 길이지요.     

무풍한송, 춤출 무(舞). 바람 풍(風), 찰 한(寒), 소나무 송(松). 바람이 춤추듯이 불어오고 주변의 소나무는 늘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어 푸름이 사계절있는 길입니다. 길의 왼쪽에는 청류동천의 물이 흐르고 오른쪽 산 능선을 배경으로 소나무들이 연이어 서있습니다. 무풍한송 길은 청류동천을 따라 노송과 계곡, 사람이 어우러진 길이지요.      

▲ 무풍한송, 언제나 바람이 춤추듯이 불어오니 주변의 소나무는 늘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민족의 수난을 견딘 수령 150년 된 나무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허리 굽은 늙은 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휘청 지나가면 마디마디 가지가지가 휘늘어져 춤을 춥니다. 나무들은 서로 다정하게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어깨를 기대기도 하고,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휘어져 힘차게 오르기도 하지요. 새색시 같은 비 오는 듯한 날, 안개가 흐릿한 날 그리고 이른 아침 무풍한송 길을 걷노라면 마치 신세계로 가는 느낌이 듭니다. 흙향, 솔향이 바람에 섞인 길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절로 가는 길은 저절로 가는 길은 아닙니다. 붓다를 찾는 길은 세속의 시름을 잊는 길입니다. 이 길을 처음 구도의 마음을 가지며 걸어간 사람은 자장스님입니다. 통도사를 창건하려고 이 길을 걸어가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오로지 한 마음, 일념이었겠지요. 참, 길을 가다가 보면 오른쪽 산 쪽에 커다란 바위가 산 위에서 아래까지 비스듬히 길게 누워 있습니다. 약간 검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바위는 물이 흘러내리거나 흐른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돗가 창건이야기와 관련된 용피바위, 용혈바위, 용혈암(龍血岩)입니다.  

   

중국에서 공부한 지 7년 만에 귀국한 자장 스님은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하여 더 많은 중생에게 극락왕생의 길을 전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절을 세울만한 명당을 직접 찾다가 지금의 통도사에 오게 되었는데,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못 가운데 이상한 물체들이 서로 엉겨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못 속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지요. 절을 지으려면 연못을 메워야 하므로 용을 그대로 두고 절을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스님은 용들이 순순히 물러가도록 정성을 다해 경을 외고 빌었으나 용들은 물러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흰 종이에다가 ‘불 화(火)’자 넉 자를 써서 진언을 외며 못 속에 던지고 지팡이로 물을 휘저었습니다. 그러자 잔잔하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못 전체가 팔팔 끓어올랐습니다. 아이! 뜨거워! 못 속의 용들은 그대로 있을 수 없어 하늘로 치솟아 제각기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마리 중에서 다섯 마리 용은 통도사의 남서쪽에 있는 영축산 아래의 골짜기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그 골짜기를 오룡골(五龍谷)로, 산을 오룡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마리 용은 동쪽으로 달아나다, 솔숲 야트막한 산의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고 지금의 삼동골로 갔습니다. 당시 부딪힌 바위에 용의 피가 낭자하게 묻게 되어서 후세사람이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홉 마리 용 중에서 여덟 마리는 연못에서 나왔고 마지막 한 마리는 달아나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그 용은 스님에게 살려달라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용은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를 불쌍히 여겨, “눈까지 먼 너를 쫓아낼 수가 없구나. 너는 이 못에 살면서 절을 수호하도록 하라.”고 하니 눈먼 용은 감사하다는 표시로 머리를 두어 번 끄덕인 후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통도사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지요.     


오늘날 통도사 대웅전 서쪽(대방광전), 삼성각 바로 앞에 있는 연못이 바로 아홉 마    리의 용이 살았던 구룡지(九龍池)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못에 가로놓인 다리를 용의 항복을 받았다 하여 항룡교(降龍橋)라 부릅니다. 이 연못은 불과 너비 3m 남짓한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타원형이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데, 이는 눈먼 용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용혈암. 길 오른쪾에 큰 바위가 비스듬하게 경사지게 있다. 비가 온 뒤에 보면 마치 피가 흐르는 듯하다.

오늘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하나를 만나려고 가는 분들이지요. 바로 내 마음의 붓다를 만나기 위함이지요. 길은 가까운 것 같지만 결코 가깝지 않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때론 심리적 거리로 인해 그 거리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합니다. 길은 결코 고무줄이 아닌데 말입니다. 절이 산속에 있음으로 인해 우린 속세와 점점 멀어지는 길을 걸어갑니다. 속세의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痴), 즉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며 가는 길이지요. 길의 끝에는 어떤 목적이 있지요. 절이 산속에 있는 것은 속세에서 가진 삼독을 버리고 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숲길은  버리며 가는 사람을 위한 길입니다. 어쩌면 붓다를 만나겠다는 것도 버려야하지요.     


길을 걸을 때 동반자가 있다면 참 좋지요. 동반자는 동지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길위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겠지요. 그때 무풍한송 길은 동행하는 길입니다. 혹시 혼자 걷는 분아라면 이 길은 고독한 철학자의 길, 사색인의 길이라 할 수 있겠죠.     


무풍한송 길은 통도사의 8가지 빼어난 풍경, 즉 통도 팔경 중의 첫째입니다. 무풍한송은 통도팔경 중 1경입니다. 2경은 취운모종(翠雲暮鍾 : 취운암의 저녁 종소리), 3경은 안양동대(安養東臺 : 일출 시 안양암에서 큰절 쪽으로 보이는 경관), 4경은 자장동천(慈藏洞天 : 자장암 계곡의 소沼가 달빛을 받아 연출하는 광경), 5경은 극락영지(極樂影池 : 영축산의 수려한 풍경이 담기는 극락암 영지), 6경은 비로폭포(毘盧瀑布 : 비로암 서쪽에 있는 폭포), 7경은 백운명고(白雲鳴鼓 : 백운암 북소리), 8경은 단성낙조(丹城落照 : 단조산성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를 말합니다.     


구하(九河, 1872~1965) 스님은 ‘무풍한송(舞風寒松)’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淸風霜雪機經劫(청풍상설기경겁)

特立溪邊水石間(특립계변수석간)

如意棒前來去路(여의봉전래거로)

秋雲無事有時還(추운무사유시환)     


맑은 바람, 하얀 눈 몇 겁이나 지냈는가

계곡물과 돌 사이에 우뚝 높이 솟아있구나

여의봉 앞 오가는 길 무풍교 앞으로

일없는 가을 구름 끊임없이 돌아오네     


무풍한송은 통도천인 청류동천과 나란히 하지만 보이다가 안보이다가 숨박꼭질을 합니다. 하천 물길처럼 이 길 역시 일직선이 아니지요. 사람살이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곧은 듯하면서 휘어져 있는 길을 걸어갑니다. 길은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걸어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 모습은 걷는 사람의 여유로움에 따라 특히 다르지요. 바쁜 사람에게 길 주변의 사물(事物)은 사물(死物)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물(思物)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이 길은 특별합니다.  비가 오고 난 뒤의 이 길을 걸어보면 압니다. 맑은 공기와 푸른 빛깔의 소나무, 무엇보다 소나무의 이끼가 생명 빛처럼 선명하게 빛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어갔을까요. 천 년 동안 통도사를 찾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절에 갔을까요. 무엇 때문에 걸어갔을까요. 우리는 길 위의 사람들입니다. 길은 사람들의 사랑의 산물입니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길은 사람의 발자국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길은 사람들 발자국끼리의 속삭임 속에 만들어집니다.

발과 발들의 속삭임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길은 밝아옵니다.

처음 걷는 산길 걷는 발은 무척 외로웠을 겁니다.

가시덤불이며 발목 잡는 풀들, 그리고 뭇짐승들이

가는 발을 잡아 못 가게 했을 겁니다.

그래도 발은 걸어갑니다.

누가 잡는다고 못 가는 발이 아니기에

혼자 가는 길 아니기에

두려움은 사랑을 이기지 못합니다.

허나 하나둘 발들이 모여

대지에 사랑을 만들어 가면

뭇발길에 사람의 길이 됩니다.

야만의 땅에도

사람의 사랑이 길을 만들어갑니다.     

-졸시, <사람의 사랑이 길을 만든다.>          

▲ 통도사 무풍한송길은 사색의 길이요, 치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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