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에 치이던 90년대생 여성 넷, 책읽고 운동하는 모임 만들다
'90년대생이 온다'는 이미 옛말. 90년대생은 힘들다. 이십대 초반의 에너지는 점점 소진되는데 사십대 이후의 지혜는 없다. 사십대가 되면 또 똑같은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쯤 지친 몸과 마음을 채울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우리는 모이게 되었다.
첫번째 모임 에세이
여성주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단단해지고, 각자 빠져있는 운동과 배우고 싶었던 운동을 하면서 몸도 튼튼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더 쎄지는 우리, '세지나즈'라고 이름지었다. (tmi. 억센 발음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부산사람들이다.)
첫번째 모임으로 무얼 해볼까, 기획자 본능이 발현되어 머릿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첫 코스는,
언니의 식탁 (prototype)
(tmi. 말만 하고 식탁 핑계, 위치 핑계 대며 미루던 - 주변 친구들 밥먹이기 - 프로젝트.)
today's menu
귀리밥, 간장새우, 만둣국, 오이탕탕이
'언니의 식탁' 프로토타입에서 배운 점.
1 다솜이는 생새우를 먹지 않는다.
2 도착시간을 맞추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3 대화를 위한 후식 필수.
맛있게 잘 먹어주어 고마워!
이어 다음 코스는 질문 카드로 서로 알아가기.
잘 모르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은별이가 사온 딸기 후식과 함께 집에 있던 이야기 카드를 꺼냈다. '더이음'이라는 곳에서 개발하고 아름다운재단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만든 활동가 조직을 위한 카드였는데, 어쩌다 구하게 되었지만 나도 처음 해봤다.
한 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질문 / 개인적인 질문 / 활동과 관련된 질문. 이렇게 세가지 주제로 들어있었다. 모임 며칠 전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격리 중이던 한별이와는 페이스타임으로 함께 했다. 정확한 활용방식을 보진 않았지만 우리는 돌아가며 한 장 씩 뽑고 모두 답변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그 중 제일 우리의 취향과 맞았던 질문은 '활동과 관련된 질문' 파트였다. 우리는 활동가가 아닌 사람도 있지만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뽑은 카드 세 장의 질문은 이러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화를 위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행동을 사회 전반에 촉발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무엇이 부족한지, 어디에 결핍이 있는지 모두가 '인식'하는 지점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해'로부터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해를 하고 이해를 시키고. 참 어렵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당신이 후원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면, 단체를 후원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앞 질문의 '변화'와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각자 사회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후원하고 있었고, 우리 넷 모두 부산여성회, 여성의 전화, 여성인권지원센터 등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단체들에 후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환경운동단체, 동물권 운동단체 등에 후원 중이었는데, 한 친구는 사람에 대한 문제는 사람이 스스로 직접 외칠 수 있지만 동물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 후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문득 얼마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 생각이 났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시장 혹은 군수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부산시를 바꾼다니, 너무 스케일이 크잖아?' 하고 생각하다가 금세 '아니, 뭐 실현되지 않더라도 얘기는 해볼 수 있잖아?'하는 마음. 한 친구는 언젠가 아이를 낳고 싶은데 한달에 얼마 주는 형태 말고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그냥 뛰어놀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높은 건물들도 없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아이를 정말 낳고 싶지만 난임인 부부들에게 지원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또 덴마크 뭉케쇠고르에 있는 순환 공동체 마을을 이야기하다가 노령인구가 많이 살고 있는, 빈집이 많은 동네를 아예 노령인구 친화동네로 만들어 모든 길과 건물에 계단을 없애고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 노후에도 마음편히 살 수 있는 동네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 관할 구의 기득권자들이 절대 반대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한 친구는 주변 친구와 안그래도 1인 가구 활동가 실버타운 같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대화를 했었단다. 아직 청년세대인 우리도 벌써 걱정되는 노년 시기... 부자가 아니라도 기본적인 이동권과 주거권이 보장된 노년이길..
개인적인 질문에 당신이 만약 유튜버가 된다면? 이라는 질문은 재미있었다. 집안일을 곧잘 하지만 어딘가 2% 부족한 일상을 담으면 재밌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면서 '청소할 때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라는 타이틀로 청소하는 모습을 편집없이 보여주는 형태는 어떨까. 친구들이랑 만나면 웃음만발한 시간들을 브이로그로 남긴다는 친구도 있었다. 캠핑갈 때 마다 캠핑브이로그를 찍어볼까 마음먹지만 실천하기 정말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나마 내가 주로 하는 기타치며 노래하는 3분짜리 원테이크 영상은 정말 만들기 쉬운 편인데, 그것조차 50번정도는 찍어야 전체가 마음에 드는 영상을 얻을 수 있으니.. 결국 결론은 유튜버 대단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그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별이는 요즘 채소가 너무 비싸서 신선한 채소가 제일 좋다고 얘기하다가 은별이가 회랑 해산물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자 '그럼 나는 연어!'라며 말을 바꿨다. 나는 어릴때부터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김치전을 이야기 했다. 혹은 김치볶음밥이라던가. 다솜이도 한식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비지찌개를 이야기해서 강릉에서 맛있게 먹었던 콩비지와 짬뽕순두부가 생각났다. 또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던 생일상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한 다솜이가 잡채와 나물, 조기구이랑 팥과 소금을 넣어 지은 팥밥을 이야기했다. 팥밥을 처음 들어본 내가 맛이 궁금하다고 얘기했더니 '언니 생일에 해주까!' 하던 다솜이. 내 생일 얼마 안남았는데 괜찮겠어..? 어쨌든 다들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둬야겠다..!
7시에 모였는데 왜 벌써 10시.. 읽을 책 정하고 모임 날짜 픽스할 시간. 집에 있던 책을 꺼내 소개했다. 어차피 첫번째 읽을 책은 정해져있었으니..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 동화책이라 쉽게 읽히고 재밌다. 전에 여성주의 책모임 때 읽었던 책으로 '말하는 몸' 이라는 책도 짧은 단편의 인터뷰집이라 잘 읽힌다. 추천. '아주 오래된 유죄'는 읽다가 중간중간 욕을 적을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여성인권의 서사... 관심있다면 꼭 읽어보길. 사실 나 책 많이 읽진 않는데 그래도 내가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어떤 운동해볼까에 대한 이야기. 클라이밍, 요가명상, 수영, 등산, 배드민턴부터 복싱, 스노쿨링, 프리다이빙까지 하고 싶었던 운동들이 무궁무진한 우리들. 일단 날이 선선하니 등산을 가보기로 했다. 왕초보 코스인 금정산 고당봉 올라가다가 울 뻔 했던 저질체력인데. 수영 3주했다고 체력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도전해보기로 한다.
즐거웠던 첫 모임. 현생이 바쁜 우리들은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알찬 올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