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집단적인 문제 해결 기계가 되었고, 이 기계는 수단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발명을 통해 수행되며, 발명의 동력은 종종 시장에서 나온다. 희소성은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는 대안 개발과 능률 향상을 촉진한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수없이 많은 책들과 영상들이 주장하고, 환경 보호 없이는 그 어떤 논의도 어려운 있는 이 시대에, 인류는 계속해서 번영할 것임을 주장하는 책이다.
- 요약
1800년대, 한 시간 노동자의 임금으로는 10분 동안 조명을 킬 수 있었다. 2010년 (책이 쓰인 시기) 동일 노동으로 300일 동안 조명을 킬 수 있다. 조명뿐 아니다. 생활에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주거, 식량, 의복, 의학, 이동 수단 등 모든 면에서 18세기에 비해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인구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음에도, 기아와 질병은 감소하고 있으며, 인류의 에너지 효율은 갈수록 증가 중이다. Win-Win을 이뤄낸 것이다.
문명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비결 (혁신, Innovation)의 축적" 때문이고, 비결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교류와 시장경제 덕분이다. 가죽을 잘 다루는 A와 밀 생산을 잘 하는 B가 있을 때, 각자 자급자족 하는 것 보다 A는 가죽만 다루고 B는 밀만 생산하여 서로 교환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이런 전문화와 교환이 호모 사피엔스 종 내에서 꾸준히 이뤄졌고, 결국 밤에 책을 볼수 있도록 돕는 작은 조명조차도 LED, 전구를 싸는 유리, 구성하는 플라스틱, 전기가 전달되는 전선,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석탄, 석탄 채굴에 필요한 기계/인력.... 등등 각 분야의 끝도 없는 전문화 끝에 1800년대 10분 정도의 조명이 갖던 가치가 현재 300일 조명의 가치만큼 싸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그 어떤 한 항목이라도, 그 과정 전부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너무도 다양한 각각의 비결, 혁신들이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며, 시장경제는 효율 상승/대안 개발이 이뤄지는 곳에 인센티브가 제공하며 현대 문명을 이룩했다.
초기의 전문화는 상인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상인들을 통한 전문화된 물품의 교환이 혁신을 축적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 부유해짐에 따라서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는 강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 지역이 부유해지는 경우, 부와 명예를 차지하게 된 상위 집단이 발생했고, 이 집단은 관료주의/전쟁/종교 등을 통해 시장경제를 저해하여 축적되었던 비결들을 해체하기도 했다. 기후 변동성이나 전염병이 더해지는 경우 인류는 다시 자급자족의 시대로 종종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는 점차 비결을 축적해 낼 수 있었다.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체제가 이 비결의 원천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체득했다. 초기의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세의 로마, 이슬람은 무역을 통해 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권력층은 종교나 전쟁을 통한 통제를 확대하였고 결국 무너졌다. 현대의 영국, 프랑스, 미국, 그리고 지금의 일본, 한국, 홍콩 등 자유무역/시장경제를 옹호한 국가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폐쇄적이었던 소련은 무너졌고 중국은 시장을 개방했으며, 여전히 독재로 통제받고 있는 북한, 아프리카와 중동의 여러 국가들은 경제적/사회적 빈곤을 겪고 있다.
인류 전체적인 관점으로, 비결의 축적은 모두의 생활을 발전시켰다. 비료를 함성할 수 있게 되면서 동일 토지의 효율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유전자 조합 식물이 개발되면서 토지의 효율은 수십 배 증가하였다. 증기기관은 초기 숯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석탄, 석유를 사용하면서 산림 훼손 없이 축적된 태양에너지를 인류에게 전달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과 태양열/수력/풍력 발전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에너지 확보에 필요한 토지/인력 등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합성섬유의 사용, 전기의 개발, 철도 개발, 자동차 개발, 컴퓨터와 휴대폰의 개발 등등 인류는 수없이 많은 혁신들의 산물을 쉽게 대중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 번영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그럼 앞으로 인류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나쁜 뉴스가 늘 신문의 1면을 차지하는 그 동일한 이유로, 비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시대에 늘 "현자" 취급을 받아 왔다. 1960년대엔 인구 폭발에 의한 식량 고갈, 1970년대엔 연료 고갈, 1980년대엔 산성비, 1990년대엔 유행병, 2000년대엔 지구온난화 이슈가 부각되어 각 시대에 각각의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고, 수 십 년 내 인류는 종의 생존을 위협받을 거라는 인식은 모든 세대에 걸쳐 파다했다.
비관론자들과 정치의 결합은 산성비, 오존층의 파괴 등 환경문제가 전 인류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광고되었으나, 명확한 인과관계는 늘 밝혀지지 않았다. 비관론자들이 기존에 단언했던 내용들은 늘 틀린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각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관론으로 그들은 다시 나타났다.
비관론자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2000년 당시 보유한 기술로는 수 십 년 내 석유 고갈에 대한 예측은 합리적이었다. 같은 이유로, 현재 상태가 유지될 경우, 지구온난화가 인류에 초래할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수많은 문제들이 그랬듯이, 인류 혁신의 축적에 지구온난화는 오존층 구멍만큼이나 지나가는 단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환경보호론자들은 유전자조작식품이 환경과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유전자조작식품이 비싸지면서 (정부 규제에 따른 세금이 붙으면서) 아프리카 기아는 더 큰 위기를 겪게 되었다. 케냐의 과학자는 말한다. "유전자조작식품의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사항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서양에서는요. 우선 저희에게 먹을 식량을 좀 주십시오." 친환경 에너지 개발은 기존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생산 시 비용이 더 든다. 기후변화에 따른 타격은 빈민층이 더 심할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빈민층에게 내일의 생활을 더 힘들게 만든다. 미래의 불확실한 어려움들로, 현재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섹스"를 통해 생각들은 진화해왔고, 교배가 쉽지 않은 생물학적 진화에 비해 생각의 진화는 더 단숨에, 단 기간에 일어났다. 일반적인 수확 체감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식량은 감소함)과 다르게 생각과 혁신은 "수확 체증"을 일으키고, 이 positive feedback은 갈수록 속도를 더해간다.
초기 전문화가 상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더 문란하게 진화하고 있다. 발명의 불꽃은 종종 꺼지기도 했지만, 반드시 다른 곳에서 다시 치솟았다. 2000년 전 인도에서, 1000년 전 중국에서, 500년 전 이탈리아, 300년 전 영국 (증기기관), 100년 전 독일 (비료), 70년 전 미국, 50년 전 캘리포니아, 30년 전 일본에서 혁신은 일어났으며, 이 창조리더의 변화 주기는 더 짧아지고 있다.
처음 컴퓨터가 개발되었을 때, 개발자는 "가정용 컴퓨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당시 컴퓨터는 1톤에 방 한 개 크기였으니 그 말은 합리적이었다. 2000년 기술로 석유가 고갈될 것을 예측했던 것처럼. 100년 전 과학자들은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의 상용화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00년 뒤 인류의 생활 수준은 그보다 훨신 상상 불가능하다. 혁신의 진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기 때문에.
- 감상
1. 비관론?
작가의 말대로 오존층 구멍, 산성비, 석유 고갈은 20년 전쯤 큰 이슈였는데 지금은 사라진 단어가 되고 말았다.
모두가 환경 이슈에 예민하고, 기업 운영에도 Environment로 시작하는 ESG를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지구 온난화 또한 지나가는 비관론 중 하나일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시원한 면이 있다(책에서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을 더 많이 서술하고 있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낙관론 만큼, 비관주의로 대표되는 책들(육식의 종말, 6도의 멸종 등등..)에도 그 나름의 과학적 근거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관련된 논문들을 찾아보고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능력도, 열정도 부족하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인류학적으로 큰 해악이 없다면, 이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2. 우리나라
이 책에서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비약적 발전을 이룬, 작가의 의도에 걸맞은 나라로 여러 번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인구학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면이 소개된다.
문명은 발달함에 따라 "인구학적 천이"를 겪게 된다. 식량 문제와 영아사망률이 해결되면서 초기 출산율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이후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출산율은 감소한다. 그리고 최근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보이듯 다시 소폭이지만 출산율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서양 국가들의 경우 부유해짐에 따라 여성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더 잘 맞추어 가는데 반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것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낙관주의자의 책을 읽었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대로, 통신과 IT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는 곧 비결 축적을 통해 이런 인구학적 문제 또한 극복해 낼 것이다...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신선한 작가의 통찰과 인류의 역사에 대한 재미로 흥미있게 읽다가도, 책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막상 내 삶과는 큰 연관이 없어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게다가 2022년 4월 현재, 책이 쓰인 2010년에 비해 더 떨어진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세계적으로 600만 명을 죽인 코로나바이러스는 낙관주의에 더 반감을 일으키는 것 같다.
작가 말대로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고, 식량은 더 풍부해지고 더 발달된 기술의 누릴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이미 생존 여부보다는 삶의 질을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선 이상, 우리 아이들이 살 미래의 대한민국이 낙관적인가?
"나 하나쯤은"과 "나 하나라도"의 중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나 포함..)이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지구온난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여기는데, "좋은 방향" 이란 것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까?..
별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설득이 필요하겠다. 생각과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설득을 지속할 새로운 힘을 얻고, 운이 좋으면 비결을 축적하기도 하면서 가보는 거다. 가다 보면 과거의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멈추지 않으면 나라도 바뀌겠지.
환경을 보호해야 하고,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사상에 절어있는 줄도 몰랐던 나 자신을 깨우는 책이었다.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술술 읽혀서 오래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재미도 있고 번역도 잘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