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가 수립한 '개인심리학'의 개론서에 가깝다.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고 이후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해 일본 아들러 심리학계의 대부가 되었다. 저자의 전공이 그리스 철학이어서 그런지, 본 책은 현인과 제자의 대화 형태로 아들러 심리학을 표현한다.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은, 사람은 행복하기를 결정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들러는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목표를 제시한다:
1. 자립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 것
1. 자립의 과정 : 과제 분리 - 자기 수용 - 타자 신뢰 - 타자 공헌 - 공동체 감각
기본 가정 : 인간은 변할 수 있다.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 내게 능력이 있다는 의식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과정 : 일의 과제 해결 - 교우의 과제 해결 - 사랑의 과제 해결
기본 가정 : 인간의 모든 고민과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
(** 위의 개념들은 모두 책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위와 같이 분류한 것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견해임)
아들러는 모든 고민과 모든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고민"과 "행복"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대조되는 개념으로, 각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들러 심리학의 "행복"은 스스로 "가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스스로 가치 있음을 느낄까?
사람은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신생아 상태로 시작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집단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관계'는 인생의 처음 생존을 책임지며, 이는 죽을 때까지 여러 형태로 바뀔 수는 있으나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고립'에 대한 공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 사이의 유대/관계를 갈망한다
고로 사람은 관계 내에서, 즉 공동체 내에서 내가 쓸모/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행복하고, 가치 없음을 느낄 때 고민이 생긴다.
1) 고민과 열등감
인간은 모두 어린 시절 신체적 한계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차이를 경험한다. 이런 경험은 모든 인간에게 "열등감"을 부여한다. "열등감"은 아들러가 최초로 제시한 개념으로, 독일어 표현으로는 "Minderwertigkeitsgefühl"로 표기되며, "가치가 더 적은 느낌"으로 직역된다. 열등감은 실제 열등성을 드러낸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주관적 해석, 즉 사회적 맥락에서 성립하는 개념이다. 인생이 불완전하게 시작하는 만큼,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고, 이와 반대되는 "우월성 추구"는 보편적 욕구가 된다. 아들러는 그 누구도 "열등감"을 오래 견디지 못하므로, 시간이 지나면 열등감은 세 가지 형태로 변형된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열등 콤플렉스"로, 열등감을 변명으로 삼기 시작한 상태이다. '어차피 나 같은 건...'의 생각으로 우월성 추구를 포기하는 경우이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어떤 인과관계도 없지만 특정 사건이 지금 나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설명하는 '무늬만 인과관계'의 함정에 빠져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우월 콤플렉스"로,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며 자기 공을 자랑하는 경우이다. 과거에 있었던 불행을 자랑하는 경우도 많으며, 주변을 걱정시키고 지배하려 하는 태도이다. "라떼는"으로 대표된다고 볼 수 있겠다.
세 번째는, 열등감을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위한 자극으로 삼는 경우이다. 앞의 두 가지는 '나쁜 그 사람' 또는 '불쌍한 나'의 이야기라면, 이 경우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이나 과거의 내가 아닌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적절한 "우월성 추구"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2) 행복
1편 "자립할 것"에서도 논의하였던 것처럼 '내가 공동체 내에 쓸모가 있는가', 즉 '소속감'이 곧 행복이라고 아들러는 정의하였다. 이때, 객관적으로 내가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공동체에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 즉 '공헌감' 이 곧 '소속감'이며 행복이다. 이 '소속감'은 초반에 이야기한 '고립'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소속감'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행복', '공헌감', '소속감' 등을 통칭하는 용어로 아들러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아들러는 '공동체 감각'이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훈련을 통해 발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소속감을 얻기 위해 공동체 내 특별한 지위 (타인과의 비교)를 얻고자 하는데, 진정한 공동체 감각은 '내가 공급'하는 것으로, '평범해질 용기(비교에서 얻는 행복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나의 가치'를 내가 공급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 남과 다른 나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나는 나"라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행복의 핵심이다.
아들러는 공동체 감각을 발굴하는 것, 즉 이 글의 주제인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다음의 과제를 통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 그 과정
1) 일의 과제
일은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과제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분업'을 하고 있다. 그 누구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작업을 스스로 하지 않는다. 모든 사회는 각자 자신이 잘하는 분야의 일을 하고, 그 생산물을 나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점은 '순수 이기심'의 조합이 분업을 일으켰고, 그런 관점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며,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점이다.
이때 분업은 '신용'을 요한다. 조건에 따라서 상대방을 믿는 것이 신용으로, 내가 제공하는 가치만큼 상대가 돌려주는 것을 기대한다.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2) 교우의 과제
신용의 다음 단계는 "신뢰"다. 신뢰는 누군가를 조건 없이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친구(교우)"로 여긴다는 뜻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공동체 감각"이다. 공동체에 내가 무언가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은 주는 만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신용"의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다.
신뢰는 명백히 어렵다. 타인이 나의 믿음을 배신할 수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큰 용기를 요한다. 교우의 과제는 '관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뛰어넘어 '행복을 위해 타인을 신뢰하기로 결정'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닌, 용기를 내서 내면의 변화를 이루어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 작용이다.
교우의 과제를 해 낸 사람의 모든 관계는 대등한 관계가 된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더 높은 사람의 감정이 중요하고, 집단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중요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친구일 뿐이다. 아들러는 개인이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관계의 수평성/수직성 여부는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생활양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명을 신뢰할 수 있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 나아가 전 인류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환경, 대상,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신뢰할 수 있게 된다.
3) 사랑의 과제
'공동체 감각'을 향한 과정 중 교우의 과제는 나의 시선과 가치관을 바꾸는 작업이었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아들러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나의 행복 추구"로 분업이 시작되고 '일의 과제'를 통과하였다면, "너의 행복 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교우의 과제"이다. '사랑의 과제'는 "우리의 행복 추구"라고 볼 수 있다.
아들러가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일반적인 '사랑에 빠지다'의 사랑이나, '이성 간의 사랑'과는 조금 다르다. 아들러는 사랑을 "상대가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이라고 표현했고,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려 ('사랑의 기술' 중)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결심이고 결단이고 약속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교우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적극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소속감은 "교우의 관계를 맺는 것(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들러는 이때 주의할 점으로 '인생 최대의 거짓말'을 언급한다. 인생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인생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에 희미한 빛을 비추며 무언가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가치관을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이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용기를 내는 것을 미루도록 유혹한다.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서로 손을 잡고 오늘이라는 날에 행복을 느끼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직시하고 빙글빙글 쉬지 않고 춤을 추어야 한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았다면 그 삶은 언제든 완결된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3. 자립할 것 +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 것
아들러의 심리학은 "자유로운 행복"을 향한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행복을 '공동체에 내가 무언가 쓸모가 있다'라는 '공헌감'으로 정의한다. 책의 저자는 행복의 길잡이 별을 "타자 공헌"이라고 설명한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
1) 개인적으로는 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상관없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자립).
2) 관계적으로는 모든 수직적인 관계를 깨는 용기, 타인이 나의 신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와 상관없이 교우의 관계를 맺고 사랑을 건네는 용기가 필요하다(사회와 조화를 이룸).
이때 우리는 환경이나 타인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내가 쓸모가 있다는 '공헌감', '공동체 감각'을 느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아들러는 이야기한다.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이전 글은 "자립" - 개인의 측면에서 행복에 도달하는 단계에 대해 논의했고,
이번 글은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 관계의 측면에서 행복에 도달하는 단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마지막 글은 교육자/상담자의 측면에서 여전히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