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속 여명
오늘도 사람 한 명을 잃었다.
내일도 한 명을 잃을 것이고
후로도 한 명 한 명 주위를 떠나갈 것이다.
내가 나를 잃어간다.
타인을 납득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어렵다.
제한된 상황에서
한정된 방법으로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럴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아쉬운 부분은 커져간다.
이 사람이 이런 모습도 알아줬으면 좋겠고,
저런 모습도 기억해줬으면 하지만
그런 걸 원한다면
차라리 점집을 가서
오늘 아침에 먹은 게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많은 모습이 존재한다.
내 친구들은 진짜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겠지만
학창 시절의,
초중고에서의 친구들이 보는 내 모습과
그밖에 외부에서 보는
나의 모습은 꽤나 다르다.
소수 규모의 단체생활이 아닌
꽤나 큰 규모의 단체 생활 속에서
내 전부를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표현이 줄어들고,
그 표현의 대한 욕망을
외부에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그런 삶이 유지될수록
자연스레 내 이미지는
두 갈래로 나뉘었고
외부에서 보이는 내 자아도
자연스레 갈린 것이다.
사실 학교 사람들이 보는 내 이미지도
내 모습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더욱이 뚜렷한 것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상하리만큼 그 모습을 생각할수록,
그때의 사람들과 있을수록
나라는 사람을 부정하게 된다.
난 날 부정하는 게 정말 싫다.
너무 벗어나긴 했는데 어쨌든
새로운 인연에게,
이어가고픈 인연에게
나를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는 것이 아닌
의무적으로 ‘납득’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지속됨에 있어
서로에게 건강한 관계로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 미련의 자국은
여명처럼 은은하게 남지만,
그 농도만큼은 무엇보다 짙게 남는다.
아무리 없애려고 발버둥 칠수록
끓이고 끓여서 날리려 할수록
미련은 더욱 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진할수록 더 잘 스며드는 법이다.
짙게 남은 만큼 또 다른 내 모습에
자연스레 녹여
잃어버린 나를 채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