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절제된 세계와 모든 것이 넘치는 세계.
우리는 평생을 두 세계를 옮겨 다니며 삶의 이유를 찾아나선다.
절제된 세계는 모든 것이 고요하다.
푸르고, 잔잔하고, 평화로우며 그 무엇이 나를 향해 달려오더라도 포근히 품어 안을 수 있을 만큼 풍요롭다.
절제하는 만큼 마음속 공백 또한 여유로워 누구에게든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조차 반길 수 있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넘치는 세계는 모든 것이 치열하다.
모든 욕구가 차고 넘치고, 아무리 많아도 갈망은 끝이 보이지 않고, 끝없는 욕심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넘치는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그저 흘러넘치는 대로 살아야 하는 세계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하기 싫은 것이 있다면 손도 대지 않는다. 그저 본능대로 살아가는, 그저 오욕 속에 살아가는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절제된 세계와 넘치는 세계 사이의 이동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발생한다.
그 흐름 속에서 양심과 의무, 책임과 여유가 살아있는 절제된 삶에 적응하면 모든 것이 권태로워진다.
내가 속한 삶에 흥분이란 존재하지 않고, 쾌락 또한 허용되지 않기에 주위 모든 것에 지루함을 느낀다.
학업, 인간관계, 미래, 성취 그 무엇 하나 엇나가는 길 없이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어느 순간 그저 양복 입은 신사들의 가식으로 보인다. 내 머릿속에 진정한 자유를 상실했다 떠오른다.
그 순간 우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어 넘치는 삶으로 스며든다. 반짝이는 모든 욕망을 갉아먹으며, 넘치고 넘치는 쾌락을 타고 이곳저곳을 부유한다.
이 한번 뿐인 삶을 나보다 더욱이 즐기고, 음미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망상에 빠져들어 절제된 세계에 대한 반감을 키워낸다. 절제된 세계의 가식만큼 쓸모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존재하는 곳만이 하나의 세계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넘치던 욕망과 쾌락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그래도 이 화수분은 멈추지 않는다.
숨이 턱턱 막혀온다.
점점 숨 쉬기조차 힘들게 차오른다.
방향 상실감에 빠져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 저 멀리 절제된 세계가 보인다.
그 어느 곳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세계이다. 누구도 위험해 보이지 않고, 숨을 헐떡이지도 않으며 넘치는 것 없이 그저 여유로워 보인다. 권태가 부러워졌다.
다시 저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사적으로 벽을 넘어 절제된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
이렇게 두 개의 삶을 옮겨 다니다 어느 순간 새로운 길에 빠져 세계의 ‘밖’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세계에서 벗어나 세계를 보게 되었다.
반듯하게 네모나고, 분리되었다고 생각한 두 세계가 하나의 선으로 원을 그리고 있다. 그 어디에도 빠져나온 곳 없이 둥글게 돌아가고 있다.
거시적으로 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세계를 떠다닐 뿐이었다. 내가 어느 세계에 속하고 있고,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것은 사실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존재하다 보면, 흘러가다 보면 그저 자연스레 한 세계를 떠다닐 뿐이다.
우리는 그저 큰 흐름 속을 부유할 뿐이었다.
어느 곳에 존재하든, 어느 마음가짐으로 존재하든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순환’할 뿐이다.
내 열정이 모두 재가 되어 번아웃이 오더라도, 내 삶이 권태롭고 무기력한 내 현재의 모습이 혐오스러울 지라도
그 감정은 그저 하나의 세계를 걷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각기 다른 세계라 생각했던 삶마저 하나의 원을 그리기 위한 수많은 점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가면 나는 지금
어떤 점을 그려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