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구도의 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윤규 Sep 21. 2022

어른이 된다는 건

being neverland?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그저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는 걸까.

엔트로피를 향해가면 어른이 되는 걸까.

구도의 길을 걷다 보면 어른이 되는 걸까.


학창 시절부터 이따금씩 애어른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나이 어린 할아버지, 딥디크 고향집 냄새, 마르지엘라 리미티드 에디션 넘버링 틀니라나 뭐라나.




항상 새로운 시각으로 내 모습을 보곤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생활하다가도 문득 내 모습에 대한 미시감이 들면, 나의 과거의 모습과는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에는 깨우치지 못한 사고와 열어보지 못한 상자가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어릴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보이고, 무심하던 세상의 이면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게 나이가 든다는 것일까.


아는 것이 많아지고, 깨우치는 것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아직 배우지 못한 것도 하나둘 보이고, 짊어질게 많아지는…


그런게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어릴적 내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제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고, 이젠 나도 당신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세상이 될까.


그때가 정말 어른이 된 걸까.


아직은 나이가 들어간다를 정신적으로 자각할 나이는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일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자각할 수 있을까?


졸업, 취업, 결혼, 출산 이러한 사회 구조적 기준이 아닌, 정말 내 구도의 길에 찾아와 일깨워줄 무언가가 있을까?




탯줄을 나고 세상을 본 순간부터는 동일한 육체, 동일한 혼으로 평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 속에서 내 예상은 자꾸만 길에서 벗어났다.


내 주변 모든 것이 거대해 보이던 시절, 20살만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던 내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22살이 되었고,


청소년기에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30대가 되면 정말 어른이 되겠구나 하던 내 주위에는 벌써 30을 넘긴 어린 시절을 함께한 형, 누나들이 있고,


더 나아가 삶의 동반자를 찾고, 아이를 낳으면 어른이 되겠구나 생각했던 내 주위엔 아직까지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는 숫자만 커진 안내자들이 있다.


정리하고 정의한다. “숫자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자가 붙고 떨어져 나가는 엔트로피의 과정이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인가?


모든 생명, 인간뿐만이 아닌 모든 우주의 존재들은 엔트로피의 과정 속에 있다.


하나 그 엔트로피는 그저 한 생명이 죽어가고 파괴되는 과정이다.


그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 고도의 이성을 정의내릴 수는 없다.


”엔트로피도 어른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단 하나. 구도의 길이다.


구도의 길 속에선 자신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로지 ‘자아실현’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지만이 존재하기에 어떤 길을 내더라도 그 끝은 동일하다.


원한다면 나를 어른이라 정의내릴 수 있는 길을 내도 좋고, 또 원한다면 절대 늙지 않는 네버랜드의 길을 낼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른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직 나에겐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 애초에 내가 어른이 된다는 사고에는 거부감이 있고, 또한 살아가면서 누군가 ‘넌 이제부터 어른이야.’라고 정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냥 무거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또한 마냥 가벼운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고싶지도 않다.


오로지 지우학과 지천명, 뜻과 깨달음 사이를 거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바라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