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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윤규 Aug 03. 2022

[Flammae Redíntĕgro]

반복의 불씨

[Flammae Redíntĕgro]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를 넘어서고, 단어는 단어를 넘어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아몬드] 中.  p.49  저자-손원평


반복의 가치는 무엇일까.


세상에 나고부터 평생을 ‘반복’을 통한 강조, 세뇌, 습관화, 각인 등 그 중요성에 대해 또 한 번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들어왔던 우리에게 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반복이 강조된 시기는 아직 가치관이 1차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10대의 유년, 학창 시절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순간 반복 학습에 대한 강조와 기상, 등교, 수업, 취침 등 반복되는 생활 패턴에 따른 생활 습관화 등 모든 순간들이 순환되는 일상을 통한 자아 확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우리는 위와 같이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반복 이외에도, 수 백 년, 수 천년, 수 만년에 걸쳐 반복된 사건들을 통한 무의식 속 습관이 있다. 바로 ‘본능’이다.


본능이란 그저 생명이 탄생할 때부터 지니는 것이 아닌 일평생에 걸쳐, 인류가 인류라고 불리기도 훨씬 전부터 수없이 반복된 상활을 거쳐 뼛속 깊이 새겨진 것이다.


일상생활에 녹아든 본능의 예를 보자면, 명과 암에 대한 인식 그리고 높이에 따른 권력에 대한 인식 등이 있다.


우리는 항상 하얗고, 순수하고, 밝은, 창창한 햇빛과도 같은 존재는 긍정으로, 어둡고, 칙칙하고, 캄캄한 밤의 어둠은 부정의 존재로 인식한다. 예로부터 야간, 시야가 차단된 어두운 공간에서의 생존에 대한 위협과 두려움이 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인간의 생존 장치로써 새긴 것이다.


높이에 관한 인식은 권력을 가진 자가  상층에 위치하여 하급자들 명령에 따르고 있는지, 감히 이 높이에 도전하는 자가 있는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하급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상향하게 하여 우러러보고 동경하고 두려워할 수 있도록 의도된 장치이다. 현대에서는 특정 공간에서의 단상이나 도로에서의 차도와 인도의 높이차 등이 누가 상위이며 우선순위인지를 가리키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일생에 걸쳐 자아를 형성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반복을 어떠한 이유로 의미가 퇴색된다 표현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온 모든 순환과 반복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반복을 통해 의미가 사라지는 원인은 바로 ‘권태’의 문제이다.


인간은 반복의 동물임과 동시에 적응의 동물이기에 특정 감정, 상황, 환경에 스며드는 데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적응하는 순간, 가치는 휘발된다.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삶 속 가치 판단에 있어서의 적응을 경계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평생을 바라던 일에 뛰어들거나,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자신만의 거대한 하나의 가치가 태어난다.


그 시작점이야 그 누구보다 열의를 끌어내고, 무엇보다 뜨겁게 불씨를 태울지라도 똑같은 가치를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자극의 날은 둔해지고, 매너리즘에 허우적대고, 사랑의 열정에 물을 뿌리다 결국 불씨가 온전히 빛을 다했을 때 그 의미는 소멸한다.


우리는 그 불씨를 꺼뜨려서는 안 된다.


반복은 우리 인간 상념의 모체이자 가장 의미 있는 가치 중 하나이다. 그런 반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


바람을 불어줄 수도 있고, 땔감을 넣어줄 수도 있고, 마른 낙엽을 던져줄 수도 있고, 기름을 부어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게 할 수도 있다. 불이 타오르는 일련의 큰 과정에 새로운 불쏘시개를 넣어주는 것이다.


반복은 ‘점’과 같은 하나의 사건이 모여 ‘선’과 같은 일상을 만들고, 선을 이어 인간 본능과 자아 정립이라는 ‘면’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 면이 쌓이고 결합되어 무언가를 담고 포용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차원을 만들 수 있도록 항상 불씨를 강구하고 갈망하되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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