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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청소부 Nov 20. 2020

곱져 놓은 한라산

숨겨 놓은 한라산

  매주 한라산 등반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는 어리목으로 올랐으니 오늘은 영실 탐방로로 향했다. 단풍철에 주말이라 그런지 주차장에서 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등산로 입구 안내판 주변에서 단체로 온 중년 여성들이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신바람 나서 큰 소리로 웃거나 사진 찍자고 고함을 치며 일행을 불렀다. 산에서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려는 나에게는 조금 거슬리는 광경이었지만, 남한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이곳을 등반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1938년, 정지용 시인은 추자도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새벽녘 해면(海面) 위에 나타난 한라산을 보며 “눈물이 절로 솟도록 반갑지 않으오리까. 한눈에 정이 들어 즉시 몸을 맡기도록 믿음직스러운 가슴과 팔을 벌리는 산이외다."(정지용 전집 2 산문, 민음사, p.137, 「일편낙토-다도해기 5」)라고 쓴 기행문뿐만 아니라 「백록담」이라는 명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등산로에 들어서니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짙은 소나무 향기가 코를 싸하게 찔렀다. 물기 없는 나뭇잎들이 서로 비비며 내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귀를 스쳤다. 굳었던 얼굴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웅장한 소나무 숲길이 끝나자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하나인 영실기암이 자태를 드러냈다. 감탄도 잠시, 십 분 정도 돌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가을 햇살은 여름 못지 않게 따가운 데다 조금 전까지 불었던 바람도 자취를 감췄다. 최근에 과로해서인지 금방 지쳤다. 잠시 등산로 한쪽에 있는 큰 바위에 기대어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며칠 전 밤 늦게까지 폭음하고 귀가해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SNS에서 유명한 시인에게‘제주도에 놀러 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튿날 잠이 깨고 나서 지난밤의 추태를 떠올리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비명을 질렀다. 낮에는 맡은 일을 척척 해내 능력자 소리도 가끔 듣지만, 밤에는 술에 취해 유명인에게 치근대는 메시지나 보내는 꼴이란. 매주 산에 혼자 오르는 것도 남들에겐 자랑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휴일에 마흔네 살의 독거녀를 아무도 만나주지 않아서였다. 극심한 피로감에 당장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걸을 만하다는 것을 알기에 숨이 잦아들자 다시 계단을 올랐다.


  윗세오름 정상에 오르자마자 휴게소로 가서 줄을 섰다. 기다림 끝에 받은 사발면을 국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서 들고 사람들이 없는 자리를 찾아 휴대용 방석을 깔고 앉았다. 배낭을 열고 커피를 담은 보온병과 김밥을 꺼냈다. 그때 바로 옆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맛있는 거 싸 왔나요? 저랑 바꿔 먹을래요?”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인지. 고개 들어보니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내 배낭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의 배낭을 무례하게 보는 것도 싫었지만 구면인 듯 능글맞은 태도를 보이는 건 더욱 싫었다. 몇 마디 받아줬다가는 옆에 눌러앉을 기세였다. 시선을 피하고 대답은 짧게 하며 불편함을 내색했다. 그런데도 이 막무가내가 이번에는 꺼내놓은 김밥을 보며 맛있냐고 물었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노려보았다. 살짝 놀란 그가 한발 물러섰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양갱을 꺼내고는 나에게 받으라고 하는 거였다. 황당함에 상대의 성의고 뭐고 할 것 없이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받으라고 했다. 더는 상대해선 안 되겠다 싶어 고개를 숙이고 무시해버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이젠 포기하고 돌아갔겠구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때 일행의 무리로 향하던 그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앉아있는 내 앞에 양갱을 던져 놓다시피 주고 가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그쪽 주려고 가져온 거니 알아서 하세요.”


  양갱 남자 일행이 떠나자 겨우 마음이 진정되면서 그제야 산의 정취를 음미할 수 있었다. 백록담을 바라보니 아름다운 신부의 면사포 같은 구름이 천천히 걷히고 있었다. 비록 한라산 맨 꼭대기는 아니지만, 윗세오름에만 올라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웠다. 산 아래서 담아온 스트레스는 몇 번의 심호흡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마음에 빈 여백이 생기며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빈자리에 이곳의 기운이 충분히 채워졌다 싶으니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대학에서 학생교육지원 사업단 행정실장으로 일한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잠시 미래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면 한라산에 와서 위로를 받고 그럼 되지 않을까? ‘남자' 꼭 필요할까?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누군가를 챙겨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 항상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내 오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간이 나면 그녀와 여행 다니고 맘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아도 별문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내 곁에서 한라산이 지켜 줄테니 건강도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던 지독한 외로움도 사라졌다. 마음의 주름살이 조금씩 펴지는 게 느껴졌다.


  하산하는 길옆 넓은 산등성이에는 억새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로 빼곡히 자란 조릿대 잎사귀에 바람이 스치며 내는 바스락 소리가 나를 응원해주는 박수처럼 들렸다.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두 시간 전만 해도 술에 취해 저지른 일을 떠올리며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면, 지금은 그깟 실수쯤이야 잊어버리자 하며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이 맛에 아무리 피곤해도 매주 산을 찾는 것이리라. 그뿐인가. 나의 한라산 사랑은 술에까지 이어진다. 술자리에서 백록담이 그려진 ‘한라산 소주’만 찾는다.

  문득 양갱이 떠올랐다. 바닥에 그대로 두고 오려다 마지못해 배낭에 넣어두었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 번도 직접 사 먹어본 적은 없었다. 포장을 뜯어 한입 깨물어 먹었다. 생각보다 무척 맛있었다. 순간 멋쩍은 웃음이 났다. 그냥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을 것을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굴었는지. 하긴 언제부턴가 내게 다가오는 모든 남자들에게 가시를 세워 야멸차게 대하고 있었다. 이러다 이상형을 만나도 쫓아버리겠다. 평생 혼자 사는 건 아닐까?

 ‘그럼 어때. 혼자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아.’  




  한라산을 마지막으로 오른 것은 그 다음해 가을이다. 내 나이 마흔다섯 살. 서울에서 제주로 놀러 온 한 남자를 추석에 소개받고 시월의 마지막 날, 함께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다음날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한달 후 고향 제주도를 떠나 그의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어느덧 결혼한 지도 5년이 지났다. 현재의 삶은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따뜻하면서 편하다. 간혹 양갱 남자를 떠올릴 때면, 이성에 대한 지독한 경계심으로 무장한 가여운 내가 보인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새로운 인연을 두려워 말고 부딪쳐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라산 전령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땐 두려움보다 용기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뜨겁던 신혼이 지나서 그런가? 가끔은 혼자 오르던 한라산이 그립다. 지난날 수많은 고민과 불안에 싸여 휘청거릴 때마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던 위로를 주었던 곳.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 끝에 고작 생각해낸 것이라곤 내가 죽어 한라산의 한 줌 흙이 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길 바라는 것이었는데….

  눈을 감으니 청명한 하늘과 시리도록 푸른 백록담이 떠오른다.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정지용 시인의 시 「백록담」이 배경음악처럼 들린다. 때마침 냉장고 깊숙한 곳에 곱져 놓은 한라산 소주가 생각났다. 오늘은 숨겨 놓은 두 개의 산을 꺼내서 그리움에 흠뻑 취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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